막막했다. 어디서부터 알아가야 할지 헤매었다. 가겠다고 호기롭게 마음은 다졌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막막함을 안고서 화면 앞에 우두커니 앉았다. 그렇게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10여분을 앉아있었다. 그때마저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대신 가는 게 맞나라는 망설임.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 순간 마음이 일렁였다. 백지장에 뭐라도 그려봐야겠다. 무작정 정할 수는 없으니 알아보기는 해야겠다. 최소한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될 만큼의 현실성 정도는 가늠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했던 것 같다.
이민은 애초에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이 죽을 만큼 싫은 건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우리를 갈라놓은 간극만 아니었다면, 나에게 닥친 예상치 못한 난관만 아니었다면 이 또한 나쁘지 않은 삶이었으니. 아니, 어쩌면 모든 걸 내려놓을 만큼의 용기 따위는 없었던 것 같다. 이민이라면 정말 모든 걸 다 포기해야 되잖아. 혹자는 그런 나약한 마음으로 어찌 떠나겠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삶을 물 흐르듯 내버려 두는 것이 맞다는 것이 일종의 나의 지향점이었던 것 같다. 삶. 한동안은 죽지 못해 살아갔던 날들도 있었다. 정서적 식물인간이 되어 비춰오는 햇살을 맞지 못하고 떠나가는 어둠을 보지 못했다. 살아가도 사는 것 같지 않던 날들, 매일을 울며 버티며 그렇게 고통으로 살아갔던 지난했던 나의 하루들. 그래도 여기 이렇게 맛있는 음식에서 무너질 줄도 알고 방 안에 비친 햇살에 기지개를 켜며 움츠려 들었던 몸도 활짝 필 수 있는 지금이 와준 것은 인생사 새옹지마이지 않느냐는 나의 개똥철학 덕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계획 없이 가는 것이 목표였다. 무계획이 어찌 계획이 될 수 있느냐마는 일단은 나가야 했다. 제일 좋은 코스는 1년 살기. 일단 살아보자.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다 보면 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에 발목을 붙잡혔던 것은 아닐까. 결국엔 유학이었다. 이왕 가는 거 공부를 해보자 싶었다. 없는 돈이었지만 켜켜이 묵혀 둔 비상금 통장을 탈탈 털 준비는 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영어 점수와의 전쟁.
어느 학교든 입학 조건이 뒤따랐다.
아이엘츠 6.5는 기본이고, 내가 가고자 하는 코스는 각 과목당 7을 요구했다. 엄청난 점수였다. 굳이 까다로운 입학 조건을 맞출 만큼 그 전공을 택해야만 했을까 싶지만,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일하고는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품어 온 낡은 꿈 하나를 끄집어냈다. 선생님. 내가 감히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이 되던가. 한때, 뒤늦게 선생님이 되겠다며 선택한 복수전공에서는 낙제를 받으며 방랑했던 지난날. 돌이켜 생각했을 때 뭐 하나 잘해놓은 구석이 없었다 나는. 오만으로 대학 입시를 말아먹고 맘에도 없던 대학에 적을 두고 다녀야 했던 순간들이 내겐 지옥 같았다. 성적이라도 잘 따놨으면 사회에 나왔을 때 지지가 되었을 텐데, 그땐 지독히도 싫었던 것 같다. 전공도, 적성도 맞지 않았지만 구태여 나는 그 이유를 학교 네임벨류에서 찾았다. 그렇게 나는 늘 부끄러웠다. 대학도 성적도 그 젊은 날 아무것도 이뤄 놓질 못한 내가.
언젠간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잘해보고 싶었다. 어디든 부딪히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보다 해보겠다는 투지가 앞서나갔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남다르게 와닿았다. 기회라고 생각이 들었다. 일순간 벅차올랐다. 나도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나는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소박한 내 꿈에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작이야말로 제일 어려운 일 같다. 그래도 이렇게 함께 준비하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고마웠다. 우리에겐 많은 조율점을 필요로 했고, 서로 아팠다. 우연히 떠난 여행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았다. 내가 그랬고, 그가 그랬다.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잠긴 생각에 둘은 생각했다. 떠나자며.
진짜 준비란 뭘까. 입학 조건일까, 비자 아니면 어떤 것이든 현실세계에 부딪힐 만한 무엇이든 숱한 조건들. 마흔이 다 되어도 미성숙한 내게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었다. 우리는 어디까지 준비가 되어있을까. 마음의 준비만도 몇 달이 걸렸는데 이 순간마저도 흔들리는 내 모습이 사뭇 부끄럽다.
노트북 뚜껑을 닫고서 잠자리에 들기 전 양치하기 위해 칫솔을 들었다. 양치를 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웃펐다. 어디에 있어도 그 순간의 나는 그때의 삶을 살아갈 텐데 떠나는 것이야말로 최선일까.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질문의 연속. 진짜 준비는 결국 마음에 있었다.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우리에겐 세세한 계획 같은 것은 없다. 또 필사적이지도 않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게 우리네 삶이니까. 우리의 뉴질랜드도 그렇게 될 거야 아마.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