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클라이밍 실력이 나날이 늘었다.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다이노(dyno; dynamic movement)를 성공하고, 몇십 번 존버 끝에 런 앤 점프를 하고, 토우 훅을 걸고. 이런 성공 경험들이 나를 들뜨게, 설레게 만들었다.
이곳저곳 원정을 많이 다녔다. 여러 암장에 가서 문제 푸는 게 재밌었다. 예전엔 엄두도 못 냈을 그런 문제들을 시도하고, 온사이트(한 번에 성공)를 해내고, 몇 번 도전만에 성공했다. 짜릿했다.
볼더링 실력이 늘어날수록 유튜브 구독자가 늘어났다. 원정 콘텐츠는 특히 조회수가 높게 나타났다. 꾸준히 운영해 온 유튜브가 최근 들어 더욱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그래서 더 원정 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유튜브에 칭찬 댓글도 달리기 시작했다. '실력 늘어나는 게 눈에 보인다', '갈수록 잘한다' 등의 댓글들을 보며 점점 욕심 났다.
5월 1일. 알레클라이밍 혜화점에 가게 됐다.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요거트만 먹었다. 다섯 문제 정도를 풀고, 한 문제 앞에 앉았다. 다이노다. 무브가 멋지다. 아 오늘은 이거 존버. 첫 시도에 뛰어서 홀드를 살짝 잡았다. 손에 착 들어오는 게 두세 번만 더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시 홀드를 잡았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성공했다. 이 멋진 영상을 인스타와 유튜브에 업로드할 생각에 설렜다. 날아오르며 홀드를 한 손으로 잡았고 이걸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스윙이 심하게 생기면서몸이 옆으로 날아갔고, 추락하면서 오른쪽 발목이 꺾였다. 그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지나갔는데, 내가 느끼기로는 공중에서 내 오른발목이 꺾였고, 그 순간 '아 망했다'라고 생각하며 추락했다. 매트에 떨어진 순간 오른 발목이 너무 아팠다. 절뚝절뚝 걸어 나와 곧바로 얼음찜질을 했다.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발목 다치고도 짜장면이랑 탕수육 먹고 일산에서 지하철로집까지 갔던 작년과 다르게 이번에는 응급조치를 바로 했기 때문에 조금 더 괜찮지 않을까 라며 스스로를 애써 위로했다.
발목이 점점 더 붓는 것을 보고 곧바로 옆에 있는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갔다. 5시간의 기다림 끝에 태어나서 붕대라는 걸 처음 감아보는 것 같은 인턴의 서투른 손길이 묻은 깁스를 하고 집으로 왔다.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는 왜 또 이러고 있나. 작년 1월, 그땐 몰라서 다쳤다고 치지만 이번엔 왜 또 다쳤나. 그저 운이 안 좋았다고 하기에는 주변에서 너무 나만 다친다. 살면서 유독 내가 운이 없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거니와 난 행운이나 불운 둘 다 안 믿는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든 일은 과거의 내가 행했던 일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깊은 자아성찰에 들어갔다.
스포츠, 체육 분야에서 단 한 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 없는 내가 유일하게 잘한다는 소리 들은 종목이 클라이밍이다. 남들 대비 크게 잘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운동과 비교하면 기적 수준이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살았지만 할 수 있는 운동이 없었고, 운동을 통해 단 한 번도 성공과 성취의 경험이 없었던 운알못에게 클라이밍은 살면서 즐기는 하나의 스포츠가 아닌 집착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 그렇게 클라이밍에 집착하면서 욕심을 내게 됐다. 그 결과 다시 발목을 다쳤다.
회복에는 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내가 이러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실력이 늘어날까. 유튜브에도 꾸준히 볼더링 하는 걸 올려야 하는데 앞으로 뭘 올려야 할까. 재활 과정을 올려도 조회수가 나올까? 또다시 나만 뒤쳐질 텐데 이걸 어찌해야 할까. 운동 안 해서 돼지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원정은 언제부터 갈 수 있지? 오만가지 걱정이 머리를 스친다.
승부욕은 내가 가진 강점이기도 하고 약점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늘 이기고 싶어 하던 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승부욕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대학생 때도, 회사에 들어와서도, 나는 알게 모르게 계속해서 스스로 주변 사람들과 경쟁했다. 이러한 승부욕으로 학점도 괜찮았고, 회사에서도 줄곧 좋은 성과를 냈다.
그러나 경쟁심은 나를 피 말리게 만든다. 경쟁의 대상이 없을 때 의욕을 잃고, 경쟁에서 졌을 때 실의에 빠진다. 지금도 나만 클라이밍을 못할까 봐 두렵다. 적당한 경쟁으로 즐기고 싶은데 경쟁조차 되지 않을까 봐 무섭다.
그렇다고 승부욕을 버릴 수 있을까. 승부욕은 나를 발전시켜 왔고 그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는 건데 이걸 버리는 게 옳은 일인가. 쉽게 버릴 수도 없거니와 그걸 버리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잖아 ㅠ
한 번의 실수는 할 수 있다. 작년의 부상으로 안전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꼈다. 그 누구보다 안클(안전한 클라이밍)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그럼에도 이번에 또 다쳤다는 건 내 정신상태에 진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3차, 4차 부상까지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