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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재판

낯선 세계, 드러나는 진실

by HyehwaYim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반국가세력 척결,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주어진 비상대권을 사용한다고 했다. 군 병력과 경찰이 국회에 동원되었고, 계엄을 막기 위해 국회로 나선 시민들과 대치했다. 급기야 계엄 해제를 위해 모인 국회의원을 끌어내기 위한 병력 투입까지 이뤄졌다. 행정부의 수장이 벌인 직권남용의 광기는 국회의 계엄 해제안 가결로 일단락되었다. 계엄이 있었던 날, 야근을 하다 말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이 생각난다. 혹시 내가 통금시간을 어긴 건 아닌지, 정말 전쟁이 일어난 것인지, 이제 일상의 모든 것들이 군의 통치 아래 바뀌는 것인지,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종잡을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대통령의 불장난 같은 짓에 국민이 다시 반으로 쪼개졌고, 정치 유튜브 채널들은 극과 극에 걸맞게 혐오와 비난의 논조로 반으로 쪼개진 국민들의 생각과 사상에 침투했다.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계엄을 선포했던 대통령의 행위를 탄핵 사유로 인정했고 헌법의 이름으로 그를 파면했다. 그리고 이러한 반헌법적 계엄 선포로 초래될 수 있었던 국가적 혼란을 선의의 마음으로 나서준 시민들과 소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던 사람들 덕분에 막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계엄을 선포했던 대통령과 그를 위시한 세력들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정치적 이물질을 끼우려 했고, 합의제 기관이 보인 만장일치의 숭고한 정신과 고뇌의 산물을 계엄 선포의 광기보다 낮고 하찮게 대했다. 국정을 책임지고 국민을 받들어야 할 고위 공직자의 정신을 잊은 채, 제2라운드에서는 다른 면모로 투쟁하겠다는 일념을 드러내며 또다시 국민을 반으로 쪼갰다. 이곳저곳에서 빨간색과 파란색이 맞붙었고, 예전보다 더 과격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대립이 이어졌다. 법원마저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공권력의 불신은 어느 때보다 최고조에 달했던 것 같다. Mbti로 사람의 성격과 성향을 판별하는 세상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정치색과 계엄의 찬반 여부로 사람을 판별하기까지 하면서 괜히 사람을 만나는 것 피곤하고 무서워졌다. 나 같은 사람은 집에서 얌전히 있는 게 모두를 돕는 일 같았다.


계엄 선포 후 1년, 현재는 제2라운드인 형사재판이 한창이다. 공개된 영상들을 찾아보며 내가 몰랐던 진실들이 무엇인지, 그들이 계엄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가고 있다. 계엄 선포가 있기 전에 열렸던 국무회의에서는 대통령의 결심을 전하는 것 외에는 국무위원들의 거센 반발이나 반대 의견이 오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각 위원마다 손에 쥐고 있던 문서에는 어떠한 계획이나 내용이 담겨 있었는지 알 순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 간에는 공유된 이야기가 있는 듯 보였다. 계엄을 선포하며 이뤄졌던 주요 정치인, 판사, 언론인, 언론기관 및 정부기관에 대한 체포 등의 제재조치는 엇갈린 진술이 아닌 일치된 진술로 드러났고, 계엄의 성공을 위해 사전에 기획된 투입 병력들의 실무장 계획도 여러 진술들로 기정 사실화 되고 있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설마 내가 그런 지시를 주도했겠냐며 진실을 덮으려고 하고, 증인과 참고인의 진술이 봇몰 터지듯 나오는 걸 보며, 부하에게 책임까지 전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국회에 군을 투입하기까지 실질적인 지휘를 했던 국방부장관의 변호인들은 재판관을 욕하는 것부터 검사, 증인, 참고인을 헐뜯는 데에만 집중하며 사안의 본질에 다가서기보다는 불평과 불만을 드러내며 차라리 재판 자체의 과정과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논리로 가닥을 잡고 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가려내는 재판이 아니라 권력의 쟁탈과 유지에 실패한 어른들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블랙코미디 같다.


형사재판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인 여러 피고인 중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는 사람은 단연코 국무총리다. 스스로 40년 이상을 공직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살았다는 그는 계엄이 있었던 당시에도 국가 경제와 대외 신인도를 우려하며 대통령에게 재고를 요청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에서 드러난 진실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대통령의 계엄 선언 계획에 대해 듣고만 있었고, 대통령의 계엄 선언을 합법적인 절차 위에 이뤄지게 하기 위해 여러 국무위원을 모으는 데 조력까지 했다. 그리고 계엄 관련 문건의 실체와 내용을 알고 있었으며, 대통령이 계엄을 선언하기 위해 회의를 끝내고 나갔을 때 행정안전부장관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까지 보였다. 더 놀라운 건 국회에서 계엄 해제가 가결된 이후다. 재판관이 국무총리에게 계엄 해제가 가결된 직후부터는 무엇을 했는지 물었다. 국무총리로서 계엄이 국가와 국민에 미칠 영향이 클 것이라 생각했다면 계엄 해제 이후 사태 수습을 위해 무엇이라도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물었다. 그때 국무총리는 내가 무엇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서, 대통령실에서 먼저 계엄 해제에 따른 수습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다. 국무총리는 누구보다 계엄 사태라는 폭풍의 눈에 있었던 사람이었음에도, 아무것도 안 하고, 무엇을 할 줄도 모르는 무능한 공직자였다. 그 무능함은 계엄이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망상과 계엄이 실패하더라도 그때의 상황에 따라 행동을 달리 하려는 의도가 만들어 낸 결정의 줄타기에서 당신이 내팽개친 국민들 품으로 떨어져 뭇매를 게 된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나는 계엄이 일어났던 작년의 겨울보다 지금의 겨울이 더 뜨겁다. 재판 과정을 통해 유죄를 물어 형사벌을 주려는 검사와 역사의 죄인이라는 오명과 감옥살이를 면하려고 아등바등하는 피고인들의 집념이 수집된 증거와 합리적 의심 아래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지금이야말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때의 진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작년이 더 낯설고 무섭게 느껴진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것이 하루 만에 끝이 났든, 총과 칼에 의한 인명피해가 없었든 중요하지 않다. 나는 어떠한 일이 한순간에, 모든 결정을 단 번에 바꿀 수 있는 어느 한 사람의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온 세상의 공기가 바뀌고 평온했던 일상이 송두리째 뺏기는 일을 겪고 싶지 않다. 부디 계엄이란 두 글자가 현실의 세계에 살아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12월이 가기 전에 밝은 달에 대고 나지막이 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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