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나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질척한 작별 인사를 좋아한다. 집에 돌아갈 때 "잘 가!"하고 쌩 가버리는 친구들에겐 왠지 모를 섭섭함을 느낀다. 헤어지기 전 오늘 만남이 너무나 즐거웠다는 말과 함께 여러 번 안녕을 말하고, 다음 만남까지 기약해야 만족스럽다.
연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들어가."
"에이, 아니야, 너부터 가."
"아니야, 아냐. 너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
한바탕 옥신각신하다가 집에 들어와야 오늘도 사랑이 넘치는 데이트를 했다 싶은 것이다. 한 번은 언니가 이 눈뜨고는 못 봐줄 광경을 목격해버렸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런 난리법석은 안 떨었을 거라며 혀를 끌끌 찼다.
이렇게 유난스러운 작별 인사를 좋아하는 내게 프랑스에서 만난 볼 인사(bise, 비즈)는 딱 맞는 맞춤옷과 같았다. 물론 처음에는 가족도 애인도 아닌 사람에게 몸을 가까이 가져다 대는 게 어색해 쩔쩔매기도 했다. 하지만 뛰어난 적응력으로 날 때부터 이 인사를 해온 양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이제 즐거운 만남은 따뜻한 포옹과 두 뺨을 맞대는 볼 인사로 마무리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야 내 애정을 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스위스의 좋은 점은 무려 세 번이나 볼을 마주대며 허공에 키스를 날리는 것이다!
ⓒ REUTERS, 구글 이미지
이 볼 인사가 곤혹인 경우도 있다. 아,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경우는 오직 친한 친구와 할 때 만이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볼 인사를 나눌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여전히 불편하다. 내 보드랍고 향기로운(?) 뺨을 내주기가 아까운 경우도 있다. 전혀 관리 안 된 덥수룩한 수염이 온 얼굴을 덮고 있거나, 얼굴을 가져다 댔는데 지독한 담배가 날 때는 이 인사 예절이 원망스러웠다. 부득이하게 먼저 자리를 떠야 하는데 열 명이 인사를 하려고 멀뚱멀뚱 기다리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타성에 젖어 기계적으로 볼을 맞대는 것이 그리 유쾌할리 없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며 볼 인사는 위기에 처했다. 3월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을 때도 길거리에서 '그래도 우리 비즈는 해야지' 하며 양 볼을 맞대는 무모한 사람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유럽이 코로나에 호되게 당하고 나서는 더는 거리에서 비즈를 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됐다. 이 인사 문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까? 아니면 바이러스가 소멸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돌아올까?
볼 인사의 기원에 대해서는 인류학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냄새를 맡으며 안전한 상대인지 확인하던 관례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어머니가 아기에게 음식을 씹어 건네주던 데에서 비롯된 전통이라는 설이 있다.
유럽 및 남미 국가에서 고대부터 쭉 이어져 오던 오랜 관습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천 년에 걸쳐 부침을 거듭했단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중세 시대에는 이성 사이의 볼 키스를 불순한 행위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래서 성직자나 남자 귀족 사이에서만 행해졌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가 20세기 들어 1차 세계대전 즈음 부활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수직 관계를 타파를 목적으로 일터에까지 도입되었다고 한다.(상사와의 비즈라니, 썩 내키지 않을 것 같다.)
지역에 따른 비즈 횟수를 나타내는 프랑스 지도
바이러스로 비즈가 잠시나마 사라진 것을 환영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이 인사의 모호함 때문이다. 프랑스만 해도 지역마다 볼을 마주대는 횟수가 다르다. 파리 및 대부분 도시에서는 두 번, 남부 일부 도시에서는 3번, 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는 4번까지 양쪽 볼을 번갈아 대며 입으로 쪽쪽 소리를 낸다.
이 인사는 성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여자/여자일 때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가능하고, 여자/남자의 경우 친구, 가족 등 친밀한 사이일 때 허용된다. (정치인의 비즈는 실제로 친해서라기보다는 친분을 과시하거나, 예의를 차리기 위한 인사다.) 남자/남자인 경우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악수로 대체한다. 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있다고 지적해온 이들에겐 이렇게나 복잡 미묘한 문화의 후퇴는 오히려 희소식이다. 다 떠나, 일단 이 인사법은 질병을 옮길 위험이 있으니 바이러스 시대엔 설 곳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 비즈와는 작별을 고해야 할 때일까? 나도 한여름에는 땀범벅이 된 끈적한 얼굴과 불쾌한 냄새, 낯선 이들과의 불편한 접촉을 피할 수 있으니 좋다. 한편으로는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들과 뜨뜻미지근한 인사를 해야 한다니, 서운함을 감출 길이 없다.
바야흐로 언택트의 시대가 왔으니 어쩌겠는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대지 않고도 뜨거운 안녕을 말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