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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May 29. 2020

거울 앞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을 자유

나의 민낯이 미안하지 않습니다

유럽의 이동제한령이 시작된 이후 만나는 사람이 없어졌다. 자연스레 화장을 관둔지 두 달이 넘어가고 놀랍게도 얼굴에서 윤이 나기 시작했다. 그간 밥을 열심히 챙겨 먹은 것이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화장을 끊어서, 혹은 화장하느라 못 잔 10분을 더 잔 것도 분명 한 요인일 것이다. 화장으로 얻고자 했던 얼굴빛을 화장을 멈추니 얻게 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밋밋하고 말간 내 얼굴도 보다 보니 익숙해져 마음에 든다. 밖에 나갈 때는 세수하고 옷 갈아입는 것까지 5분이면 충분하다. 이 편한 것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다니 억울한 마음마저 든다.


전부터 탈코르셋 담론에 깊이 공감했고 동참하고 싶었으나 늘 주저했다. 강제로나마 내 삶에서 메이크업을 덜어내니 많은 것이 다시 보인다.  모든 여성이 꾸미거나, 꾸미지 않을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화장하지 않은 여성에게 예의가 없다고 하고, 진한 화장을 하면 세 보인다고 말하는 폭력도 멈출 때가 왔다. 화장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쉽게 판단하기엔 훨씬 복잡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행위가 아닌가. 누군가에게는 표현과 치유의 수단일 수도 있다.  



'난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하는 용감한 여성들을 보며 선뜻 함께하기가 망설여질 때 한 생각이다. 그러나 순전히 좋아서 하는 것이라면 왜 정해진 규칙에 따라 화장하고, 약속이 없는 날에는 혼자서 화장했다가 지우는 일을 반복하지 않는지, 화장이 잘 먹은 날에는 왜 셀카라도 남겨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나의 선택이 온전히 나의 선택이라 믿는 것은 너무 순진했다. 우리는 모두 대상화된 여성의 이미지에 숨 쉬듯이 노출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시간이 많이 들지도 않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다. 손이 보이지 않는 빠른 속도로 퍼프를 두드려 결점을 가리고, 아이라이너를 번지지 않게 그리는 노하우를 터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거듭했는가. 매일 아침 수년간의 실습으로 체득한 기술이었다. 화장을 하면서도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로 비춰지기 위해 유튜브를 보며 공부를 한 적도 있었다. 10분 화장이 가능하기까지 들였던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 속이 쓰려온다.  


'쌩얼이라 미안해요'

누구한테, 왜 미안해야 했지? 화장한 얼굴만이 타인과의 만남을 위한 기본예절인 것처럼 여겨왔다.  더는 내 민낯을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 아래 같은 빨간 색은 없다며 내 눈에도 그게 그거인 립스틱을 사면서 나를 속이는 일도 그만두겠다.



'우리는 언제나 외모에 신경 쓸 것이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중요한 목표에서 멀어질 때 발생한다. 이제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도 그에 맞춰진 눈금판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 외모와 관련해서 시간과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신중히 결정하지 않으면 외모를 가꾸는 행위가 우리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러네이 엥겔른<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꾸민 중단을 선언한 여성을 비난하는 것이 옳지 않듯, 아름다움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여성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여전히 '예뻐 보이고 싶은' 자리가 있으면 어김없이 거울 앞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화장하지 않는 삶의 달콤함을 맛본 이상 화장이 당연한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내 삶의 외모 눈금판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 두 달간의 노메이크업이 준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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