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 단체 채팅방의 출구

by 필경

가끔은 스마트폰 상용화 이전이 그리울 때가 있다.

2005년 발매 중단 전까지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책을 보았을 것이다. 집집마다 보유하던―지역민들의 성명, 전화번호가 깨알처럼 적힌―두터운 전화번호부. 어릴 적, 해가 하늘에 딱 붙어 떨어질 줄 모를 만큼 무료한 날에는 전화번호부를 펼쳐 검색하곤 했다. 나는 아버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발견하는 게 동네 놀이터에 떨어진 500원짜리 동전을 줍는 것보다 더 신기했다. 옆집 아저씨의 이름과 전화번호, 좋아하는 아이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게의 전화번호를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특이한 이름이 눈에 띌 때면 배꼽을 잡고 웃던 기억도 떠오른다. 어느 날은 친한 친구―김 씨 성을 가진 아이―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친구가 적어준 쪽지와 전화번호부를 비교했다. 며칠에 걸쳐 김 씨 성을 가진 이름을 손가락으로 쭈욱 짚어 내려갔다. 마침내 전화번호와 성씨가 일치하는 순간, 그 친구네 아버지의 성함을 발견한 나는 사건을 해결한 탐정처럼 쾌감을 느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질 즈음이면 밖으로 나갔다. 오후 4시쯤, 친구들이 하나둘씩 놀이터에 모여들었다. 땀에 젖을 만큼 뛰놀다 보면 어느새 내 얼굴은 해처럼 붉어 있었다.


사회인이 되어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손에 쥔 날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변해갔다. 그중 첫 번째로 거실 탁자 위에 놓였던 전화번호부와 가정용 전화기가 사라졌다. 나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곧잘 외우곤 했는데 이제는 집의 도어록 비밀번호 외에는 외울 필요가 없었다. 더는 특이한 이름이나 좋아하는 아이의 전화번호를 머릿속에 저장하지 않았다. 메신저가 등장하고부터는 얼굴을 맞댄 만남이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소속감이 그리운 듯 단체 채팅방을 개설했다. 모든 공지 사항이나 일정 조율이 그 안에서 이뤄졌다. 혀가 늘어질 듯 심심할 때는 채팅과 개인톡을 주고받았다. 전화로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기 전 느낄 수 있는 복잡한 감정 대신 무미건조한 따분함이 자리를 틀었다.


단체 채팅방의 열기는 쉽게 사그라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안부를 묻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이모티콘으로 들썩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고요한 수면만이 흐르는 이곳. 누구 하나 돌을 던져 정적을 깨뜨리지 않는다. 인사 한마디 건네봤자 돌아오지 않을 반응을 예상하며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처럼. 누구도 나가지 않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을지 골몰했다. 한편으로는 정의의 용사가 나타나 단체 채팅방을 없애고 “놀이터로 모여!”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나는 아직도 조용한 호수 같은 채팅방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왜 잔류하는 것일까. 이주민처럼 잠시 머물다 또 다른 방을 찾아가려나. 싸늘한 정적만이 감도는 이 방에서 그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안녕, 잘 지내고 있나요?”라고 먼저 다가와 주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이겠지. 구불구불 끝이 없는 단톡방의 출구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손을 흔드는 이모티콘으로나마 생존을 알릴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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