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댕!
고요한 오후의 틈으로 세탁기 알림이 울린다. 어느새 세탁이 다 된 모양이다. 점심을 먹고 무료해질 즈음, 제법 따뜻해진 날씨를 핑계 삼아 봄맞이 빨래터를 개방했다. 빨래 바구니에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겨울 점퍼들이 잔뜩 쌓여있다. 틈틈이 세탁하지 않으면 일주일은 족히 걸리기에 부지런히 움직여본다.
먼저 아이들(1호, 2호)의 점퍼를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완료까지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그 사이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책을 읽을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하교 후의 우리집은 도떼기시장처럼 혼란의 도가니가 될 것이기에 이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 도서관에서 빌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서가에서 꺼내어 읽어 내려갔다. 한참이 흐른 후, 세탁기 알림이 나를 불렀다. 그때까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책을 덮고는 곧장 세탁기로 향했다. 세탁기 문을 연 순간, 나는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세탁기 내부며 옷이며 할 것 없이 사방에 종이 쪼가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게 아닌가. 통을 유심히 살피다 천장에 반짝이는 얇은 비닐들을 발견했다. 2호의 포켓몬 캐릭터 카드였다. 심지어 2호가 제일 아끼는 ‘뮤’였다. 이게 대체 뭐야! 나는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옷들을 들춰보니 미처 다 씻기지 못한 세제 거품도 맺혀있었다. 어느 주머니 속에서 나왔는지 모를 부서진 2호의 장난감들까지. 이것이야말로 대환장 파티구나. 나는 마음속으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쳤다. 왜 아무런 의심 없이 세탁 전에 옷 주머니를 뒤져보지 않았을까. 왜 잔뜩 부풀어 오른 주머니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애꿎은 세탁기를 쥐어박았다. 나를 위한 1시간 30분을 탐한 대가가 이런 것이란 말인가.
1호와 2호가 기저귀를 차던 시절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터진 기저귀와 아기 옷가지들이 사이좋게 섞여 있어 몇 시간을 반복해서 다시 세탁했었는데. 그때는 밤잠도 설쳐가며 키우던 시절이라 정신이 없었다 쳐도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나란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해야 깨닫는단 말인가.
세탁도 세탁이지만 2호가 ‘뮤’의 행방을 찾을 텐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도통 떠오르질 않는다. 물건을 제자리에 놓지 않은 2호를 탓해야 하나. 아니면 세탁물을 점검하지 않은 나의 방심을 탓해야 하나. 잠시 달콤한 휴식에 눈이 먼 나에게 믿음의 배신은 참으로 가혹했다. 자나 깨나 세탁물 조심. 빨래감은 다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