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네 학교에서 사서 도우미 모집 안내문을 보냈다. 으레 흘려 넘기려는데 옆에 있던 1호가 말했다. “엄마도 학교 도서관에 와주면 좋겠어요. 저 책 읽는 것도 보시고요.” 1호는 일주일에 서너 번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그런 기특한 아이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이번에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와달라는데 그렇게라도 아이를 응원하고 싶었다.
며칠 후, 사서 도우미 전체 모임에 참석하러 학교에 갔다. 도서관에 들어서니 학부모 몇 분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스텔톤 벽지와 허리 높이의 서가가 안정감을 주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일할 생각을 하니 어쩐지 즐거울 것 같다. 일이 손에 익기까지는 허둥지둥하겠지만.
한때 사서를 꿈꾼 적이 있다. 책을 정말 사랑한 나머지 ‘도서관에서 일하며 돈까지 벌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라는 순수한 마음도 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현실 너머에 사는 사람이었다. 비록 사서는 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독서 애호가로서 도서관을 누리며 사는 삶이 있어 행복하다. 이번에 1호 덕분에 사서 도우미로서 경험할 기회가 생겼으니 이 또한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임이 끝나고 밖을 나서려는데 서가 근처 바닥에 놓인 책들에 시선이 사로잡혔다. 사서는 “원하는 책이 있으면 가져가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게 웬 횡재인가. 나는 그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혹시라도 좋은 책을 누가 먼저 가져갈까 봐 눈에 불을 켜고 책더미를 들췄다. 애정하는 작가들의 이름이 보일 때마다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가며 책을 골랐다. 내 입에서는 연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어머나. 세상에. 맙소사. 이 책들을 가져가지 않으면 곧 폐기된다고 하니 너무나 속상했다. 더구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소중한 책들이 버려지는 걸 차마 볼 수가 없다.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작가의 머릿속에서, 손끝에서 고뇌와 방황의 시간을 거쳤을지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수레까지 빌려 열심히 모은 책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욕심이 화를 부른 모양이다. 난데없이 수레의 바퀴 한쪽이 빠져버렸다. J에게 전화해서 전후 사정을 얘기하니 가시 돋친 질책이 이어졌다. 책을 손안에 넣은 기쁨도 잠시, 자책하며 바퀴를 끼우려 했지만 아예 부서졌는지 소용이 없었다. 기어이 오늘도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책에 눈길이 간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간서치(看書癡)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