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5] X

by 필경

요즘 일상에서 종종 들리는―귀에 거슬리는―단어가 있다. 바로 ‘미치다’이다. 이것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괴롭거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 여러 상황에서 남발되고 있다. 미쳤네, 미쳤어와 같은 파생된 단어들 또한 보편적 일상용어로 자리 잡는 실정이다. TV 프로그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상 대화에서도 거리낌 없이 튀어나오는 이 단어들을 듣고 있으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2호와 일본식 음식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허기진 2호가 허겁지겁 먹더니 그릇의 반이나 비우더니 한 마디를 꺼냈다. “와, 미소 라멘 미쳤다!” 옆에서 음식을 먹던 나는 순간 젓가락질을 멈추고 2호를 바라봤다. “뭐라고?” 그러자 2호는 더욱 큰 소리로 엄지를 추켜올려 맛이 미쳤다고 말했다. 나는 2호에게 무슨 맛을 그리고 싶었는지 구체적으로 대답해 달라고 요구했다. 2호의 대답은 이랬다. 맛이 고소하다. 면이 쫄깃하다. 국물이 진하다. 자신이 아는 단어를 활용해 얼마든지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데도 2호는 왜 딱 한 마디, 미쳤다는 말로 뭉뚱그렸을까. 표현의 단순화, 쓰임의 오류를 범하는 게 비단 아이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요리의 풍미를 표현할 때나 작품을 평가할 때, 심지어 누군가의 실력을 극찬할 때조차 “와, 이 요리 미쳤어요.” “이 작품 미쳤다.” “이 가수 미쳤네. 노래를 왜 이렇게 잘해.”라고 공용어처럼 사용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미치다’의 위력이 실감된다. 이대로 사용해도 괜찮은가. 편리함의 순기능 뒤에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고유의 쓰임과 기능을 잃은 단어는 소멸될 것이다.


문득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신어가 떠오른다. 단어의 수가 줄어듦으로써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이 통제되는 장면은 먼 훗날 우리의 자화상을 연상케 한다. 과장된 우려일 수도 있지만 간과할 수는 없다. 경계 없는 입버릇으로 우리의 귀와 입이 물들지 않도록 세심한 신경이 필요하다. 세상은 다채로워야 마땅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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