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6] 사랑도 공부가 필요해

by 필경

달력에 친 빨간 동그라미 아래에 ‘꽃 물주는 날’이 쓰여 있다. 창 너머로 햇빛이 스며들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목이 말랐는지 잎이 시들하니 축 처진 꽃들이 보였다. 물뿌리개로 흠뻑 물을 뿌리던 찰나, 분홍빛 칼랑코에의 자태가 수상해 유심히 살펴봤다. 연둣빛 새잎에 하얀 점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꽃잎에도 떡가루가 내려앉았다. 여기저기 들춰보니 검은 점들이 기어갔다. 벌레가 낀 모양이다.


일단 티슈로 닦아낸 이파리들은 깨끗해졌는데 꽃잎 사이사이가 촘촘해서 남은 점들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세심하게 신경 썼더라면 건강하게 잘랐을 텐데. 안타깝지만 결단을 내릴 시간이다.


서랍에 넣어둔 원예용 가위를 꺼내 알코올로 소독했다. 싹둑. 꽃 뭉치가 잘려나갔다. 그 모습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매일 한 송이씩 꽃망울을 터뜨리며 설렘을 안겨주던 너를 허망하게 보내다니. 온몸으로 보낸 메시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리숙한 이가 또 있을까.


손질한 화분을 통풍이 잘되는 반그늘에 두고 말을 건넨다. 나를 이해해 달라는 어느 구차한 사내처럼, 다음 생에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잘해주겠다는 어느 절절한 사내처럼.

마음만 앞선 사랑의 말로는 씁쓸한 이별 뒤에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남긴다. 상대를 모르는 사랑은 이기적인 욕망일 뿐이다. 사랑도 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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