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은 인류의 역사를 비롯 현대 사회를 서사, 즉 이야기의 관점으로 분석하고 비평하고 있다. 단, 주인공으로서의 영웅이라는 프레임을 전제로 하는데, 서두부터 이와 같은 서구적인 방식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다룰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런 전제의 근거는 서구 문화가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했거나 최소한 보편적인 영향력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일종의 단언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꽤나 인기인듯 하지만, 나는 이 부분을 읽자마자, 바로 불쾌한 의구심이 들었다(그렇다고 책을 완독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서구적 문화가 기준이라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왜 하필 '영웅'이 테마인가?
영웅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책의 서구적인 눈길을 따라가자면, 이 책에는 자주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책에 나온 몇 가지 단계대로라면 그리스 신화의 대표적인 인물들, 프로메테우스, 헤라클래스, 오디세우스 등이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 책이 분석한 영웅이란 다음의 단계를 거친다. 간소화하자면, 1.익숙한 세상, 2.모험으로의 부름, 3, 거부, 4.문턱, 5. 시험, 동지와 적, 6. 영혼의 어두운 밤, 7. 부활 등이다. 이 과정을 통해 영웅은 그들만의 믿음, 일종의 신념을 가지게 된다. 책에서는 영웅에 대해 그들이 얻게 된 결과에 대한 본질적인 정의를 하기보다, 서사적 과정을 통해 기능적으로 영웅을 설명한다. 영웅은 그들이 보여주는 모험을 통해 삶이라는 수식의 풀이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복잡하게 서술해놓았을지라도 영웅의 역할은 결국 '구원'에 있다. 그것이 개인이 겪는 것이든 공동체로 이어지는 것이든지 간에 말이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에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라는 부제가 붙고 또한 '포스트 영웅시대의 영웅'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서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메타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들도 이야기꾼이 되어 사회라는 작품을 '올바르게' 써내려가면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믿은 듯하다.
영웅을 이 책의 프레임으로 잡은 데에는 두 가지 큰 실수가 있다. 하나는 기능주의적으로 현실을 바라보았다는 점, 또 하나는 영웅의 서사가 스스로의 운명을 통제한 것이라고 착각한 데에 있다. 책에서는 가장 초창기의 보편 서사인 종교를 원시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현대의 소설과 경제가 보다 진화한 형태라고 말한다.
하지만 문학이 종교나 사상의 힘에 비할 때에 과연 얼마만큼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는가? 현대 문학이 실패했다는 것은 이미 지금 시집 한 권의 단가가 얼마인지를 보면 뻔히 나온다. 겨우 몇백년만에 소설은 패배했다. 하지만, 보라, 종교는 세속화가 극에 달한 지금마저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지 않은가?
종교가 문학에 비해 이렇게 강력할 수 있는 이유는 종교라는 서사의 내용이 신자들에게 '현실'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어느 종교의 성직자나 붙들고 물어보아라, 신의 구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고 오직 그 가르침만 중요한지. 순교자와 성인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 보편종교가 생겨날 수 있었던 것도, 죽음마저 불사할만큼 종교의 신앙이라는 것은 매우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영혼의 존재와 억겁의 지옥, 그리고 영원한 천국도 그들에게는 눈앞의 황금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있을 법"한 것만 추구하는 소설은 신념이나 가치를 '창출'해낼 수 없었다. 그들은 그저 인류의 지난한 역사 가운데 무수히 존재했던 본질적인 교훈들을 재해석한 것일 뿐이다. 있을 법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다분히 기능주의적인 태도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었다. 사실이라기에는 너무 뚜렷한 한계가 존재하는 소설을 읽고 나서 사람들은 "결국 이것도 픽션이니까"라는 자조와 좌절을 현실의 벽 앞에서 느끼게 된다.
소설을 예로 들었으니 말인데, 이를 가지고 두 번째 근거도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소설은 근현대인의 관점에서 세상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를 실현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노력은 세계 2차 세계대전, 냉전, 기후위기, 다시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을 이루려고 허우적대며 닿지도 않을 뭍으로 팔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우리가 사는 지구, 이 시대, 이 장소의 인간이 되어 살아가는 지극히 실존적인 개인의 운명조차도 마음대로 못하는 입장인데, 무엇이 이 시대를 이끌 수 있다는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문학은 이미 패배했다.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도 실패했다. 그들은 차라스투라의 망치로 부서지듯이 자꾸한 허물어져갔다. 그러니 이 책이 말하는 갓난아기와도 같은 서사가 무엇을 말하겠는가?
영웅도 운명의 도움이 없었다면 즉 작가의 애정과 펜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는 늘 작가의 손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은 인류 스스로 작가의 손이 되어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말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우리는 방금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대로 인류는 서사를 잃은 원숭이로 전락하여 공허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말해져왔던 영웅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만일 서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말로 깨달았다면 우린 새로운 서사나 종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겸손되이 본질적인 믿음을, 신념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성찰해보아야 한다. 서사가 아닌 현실 그 자체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