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읽게 된 <AI 빅뱅>이라는 책에서는 AI의 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인문학의 미래에 대해서까지 과학적/철학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AI의 원리에 관한 구체적인 서술이 앞부분에 상세하게 되어있지만, 나는 그 모든 걸 다 이해하지는 못한 까닭에 이 책이 조망하고 있는 인문학에 기여하는 인공지능의 속성에 대해서만 간단히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최근 인공지능이 창의적인 활동마저도 인간보다 뛰어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이에 저자는 인공지능이 예술가를 위한 도구인지, 아니면 인공지능 예술가가 출현하는 전조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질문의 답부터 말한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도구이다. 분명 인공지능은 정교한 모방을 통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이용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는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그 또한 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작품 독자적으로만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것이 "예술작품"이 되지는 않는다.
인공지능은 지도학습, 즉 오직 해결해야 할 문제를 외부의 인간이 부여해야만 지식을 습득한다. 반면 인간은 고민과 고뇌를 통해 창의성을 발휘한다. 인공지능은 기계적인 사고는 가능할지라도 성찰은 불가하다. 다시 말해 어떠한 당위를 자신의 힘으로 도출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치에 대한 판단이 인공지능에게는 불가능 하기 때문에 아무리 기술적으로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도, 자기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할 수 없다. 결국 인공지능의 작품이 예술인지 아닌지 그 결정권을 인간이 쥐고 있다고 한다면 인공지능은 예술가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물론 '작가의 죽음'이라는 말을 들며 누군가는 평가자로서의 예술가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술의 최종사령관인 인간의 역할은 건재하다.
어떤 의미에서 주체로서 예술가의 역할은 내어줄 수 있어도, 비평가로서의 인간의 역할은 본질적인 것이다. 그동안 비평의 역할이 미미해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인간 정신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실로 오랜만에 유물론적인 행위나 실천이 아닌 관념적 비평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 비평의 역할은 이성적 개념에 그치거나 논리적 근거에 의존하게 되어서는 안된다. 인간의 창의성에 이성 못지 않게 조화를 이뤄야하는 것은 감성이기 때문이다.
이 '비평'은 비단 예술에만 그치지 않는다. 비평의 역할은 문학이나 철학, 사회과학에까지도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문사회 분야에서 살아남을 일자리는 비평가일 뿐인가? 일차적으로는 인공지능 그 자체가 작품이나 이론을 만들게 해놓고 인간이 평가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단순히 도구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물리적인 미흡함을 보완하는 방식으로도 인공지능을 도구로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주체로든, 객체로든 평가는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념의 부활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그동안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적으로 적용했던 유물론이나 신유물론만으로는 인간 정신의 균형을 이룰 수 없으며 결국 그토록 강조되어 왔던, 혹은 현재는 재고되어 오는 인간의 존재를 해명하고 사회의 재구성 방법을 제시하려면 현상만을 연구하는 과학이 아닌 본질과 의미, 당위를 성찰하는 현상학, 혹은 철학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