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이미 뛰어난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매우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자신이 문학이론에 관한 글을 따로 집필했다는 점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우연히 민음사에서 나온 괴테 전집 중 <문학론>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되게 신기했다. 그렇다고 괴테가 미학자들이나 비평가들처럼 문학이론을 체계화하여 정립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개별 작품들에 대해 논평을 하면서 문학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밝힌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 논평들은 나름대로 괴테가 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잘 보여주고 있고, 마치 귀납법처럼 각각의 케이스들로부터 괴테의 문학이론을 독자가 나름대로 끌어낼 수 있도록 한다.
여러 글들 가운데에서도 눈에 띄었던 것은 맨 처음에 실린 <셰익스피어 기념일에 즈음하여>라는 글인데, 이 글은 평소 괴테가 존경하던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기념일에 그의 작품 세계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괴테도 대단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를 그토록 존경한다니, 뭔가 엄청난 감명을 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글의 서두에서부터 "거대한 보폭"으로 인생의 발자취를 남겼다는 표현이 인상깊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본격적인 논평은 사실 단순한 찬양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셰익스피어 문학 작품에 대한 자세한 논평과 더불어 괴테 자신의 문학론을 <셰익스피어와 그의 무한성>이라는 글에서 나타내고 있다. 이 글에서 괴테는 셰익스피어에 관하여 일반적 시인, 고대인 및 현대인과의 비교, 본원적 극시인의 3가지 갈래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일반적 시인으로서 셰익스피어는 독자의 "내적 감각"에 호소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괴테의 말에 의하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정신적 언어들로 쓰여 있기 때문에 단발마적인 감각적 심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독자의 상상력에 호소한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세계정신 (Weltgeist)과 동류에 놓으며 괴테는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함에 있어서 "풍요로운" 내용을 구성한다고 한다.
"그의 작품의 도처에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안개와 구름에 휩싸여 있으며 세계의 모든 지역을 향하여 활동하고 있는 영국, 그 영국이 숨쉬고 있다."
괴테는 이렇듯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극시의 등장인물들이 지니는 생동감에 대해 그 인간미를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고대인 및 현대인과의 비교에서는 괴테가 근대 소설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우선 괴테는 고전 세계와 근대와의 대립항을 표로 정리해놓고 있다.
고대의-현대의
소박한-감상적
이교적-기독교적
영웅적-낭만적
현실적-이상적
필연-자유
당위-의욕
이들 중 고대 문학에서 가장 우세한 것은 당위와 실행 사이의 불균형이고, 근대 문학에서는 의욕과 실행 사이의 불균형이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하는데, 당위는 딱딱한 호두 같이 벗겨내기 어려운 짐이라고 표현하는 반면에, 의지는 인간이 자기 스스로에게 과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유를 강조하는 근대성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고대의 비극은 회피할 수 없는 당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제약을 받지만 셰익스피어는 근대성과 현대성을 "열광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 햄릿이나 맥베스와 같은 작품들에서처럼 등장인물 한 개인을 초월하는 의욕은 분명 현대적인 것이지만 외적 요인을 계기로 이것이 촉발된다는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대한 것들 외에도 여러 독일잡지들에 실린 괴테의 평론들이 실려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괴테의 종교철학이나, 당대의 민족문학에 대한 철학이 주로 반영되었기 때문에 괴테의 근대적인 문학세계를 알아보는 데에는 이 두 가지 글만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채는 천재를 알아보는 모양이다. 괴테와 같은 비범한 사람이 자신의 자존심을 겸손히 내려놓고 한 작가를 이토록 칭송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