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TV예능프로그램에서 셰프, 요리사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이전에는 ‘한국의 맛’을 소개하는 다큐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바로 그런 한국의 정통 맛을 소개하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TV 교양프로그램을 만들던 박혜령 감독의 역작 <밥정>이다. 전국을 떠돌며 식재료를 찾아, 독특한 삶의 철학을 담은 음식을 만든다는 방랑의 세프 임지호가 주인공이다. “자연에서 나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라는 음식철학을 가진 그는 잔디, 잡초, 이끼, 나뭇가지 등을 재료로 한 요리들을 선보였다. 이 영화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미슐랑 별을 노리고 만드는 미각의 절정도, 바글바글 손님을 불러 모으는 삼대 맛집의 숨겨진 손맛도 아니다. 혀 끝이 아니라 심장과 영혼을 완전히 잠식하는 소울푸드를 내놓는다.
영화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어는 겨울 산을 걸어가는 임지호 셰프의 발길을 따라가면서 시작된다. 셰프는 추운 눈보라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들풀, 들꽃, 야생의 나물을 채취한다. 이것이 요리의 재료가 될 것이란다. 정말 그는 대한민국 자연산천 곳곳에 난 흔한 꽃, 이름 없는 식물, 생소한 자연의 산물로 요리를 한다. “쓱쓱, 싹싹, 댕강댕강, 탁탁~”
놀라운 것은 그가 호텔 주방이나, 식당 조리실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산으로 들로 바닷가로 가면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초라한 부엌으로 들어가서 부뚜막에서 보글보글 자글자글 그들의 삶의 공간에서 먹을거리를 뚝딱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차츰 임지호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그렇게 산천을 돌며, 자연의 식재료로, 이 땅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영혼의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임지호 셰프의 요리 방식은 현장주의이다. 산골에 사는 사람들도 몰랐던 돌담에 핀 야생의 나물로 전채요리를 만들고, 갯벌 소스를 곁들인 백년초 무침을 만들고, 뒷산에서 주운 솔방울로 국수 다시를 낸다. 그렇게 뚝딱 냉이국도, 토란국도 산의 향기와 땅의 기운을 담아 완성시킨다.
그렇게 임지호 셰프는 지리산 골짜기 단천마을에 사시는 김순규 할머니를 위해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밥정>은 임 셰프가 얼굴도 모르는 친모에 대한 애틋한 정, 뒤늦게 알게 된 양모의 깊은 정을 애달파하며 지리산 한 할머니에게 바치는 사모곡인 셈이다. 명품 조리기도, 반짝이는 식기 세트도, 라벨 붙은 간장 용기 하나 없이 임 셰프는 오직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 요리한다.
그렇게 임 셰프의 요리를 쫓아오다 관객은 할머니의 부고를 듣게 되고, 마지막 정찬을 받아들게 된다. 임셰프는 3일 밤낮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요리를 만든다. 그렇게 마련한 108가지 요리를 올린 상은 다 쓰러져가는 시골 할머니 집 대청마루를 가득 채운다.
박혜령은 감독은 “이 영화가 자연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통로가 되어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피로회복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마도 <밥정>을 보고 나서는 근처 맛집을 찾기 보다는 전화기를 먼저 들 것 같다. 고향의 어머니가 아니면 누군가 떠나간 사람이 몹시 그리워질 것이다. 이 영화는 입맛을 다시게 하는 영화가 아니라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영화이다. (박재환 2020.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