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Jojo Rabbit, 2019
전 세계적으로 8억 5천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린 마블의 <토르 라그나로크>를 연출한 뉴질랜드의 타이카 와이티티(Taika Waititi) 감독에게는 마오이 핏줄이 흐른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유태인이다. 그는 자신을 ‘폴리네시안 유태인’이라고 말한다. 유태인 와이티티가 히틀러를 연기한 영화가 바로 <조조 래빗>이다. 영화감독, 각본가이자 코미디언이이고 했던 그가 만든 <조조 래빗>은 과연 어떤 영화일까.
나치 열성신봉자, 조조의 비밀
요하네스 ‘조조’ 베츨러(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열 살 철부지 소년이다. 겁도 조금 많은 편이다. 아빠는 이태리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조조는 씩씩한 엄마 로시(스칼렛 요한슨)와 함께 2차대전 마지막 혼란스런 나날 속에서 ‘정통 아리안’으로서의 프라이드를 지키며 살아가려고 한다. 조조 곁에는 언제나 상상의 인물 ‘히틀러’가 있어 “하일~히틀러”하며 용기를 준다. 나치소년단 캠프에서 수류탄사고로 몸을 다친 조조 ‘래빗’은 더욱 히틀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어느 날 조조는 2층집 벽장 안에 숨어사는 유태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를 마주치게 된다. 꼬마 나치와 유태 소녀의 슬픈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크리스틴 로이넨스의 소설 ‘Caging Skies’를 영화로 옮겼다. 소설제목으로 봐서는 답답한 벽장 속에서 내다보이는 하늘의 슬픈 영상이 떠오른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를 최대한 즐겁게 만든다. 어린 소년은 나치의 무서움을 모르고, 상황의 엄중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벽장 속 유태 소녀를 계속 숨기게 되는 딜레마도 감당할 수 없다. 그런 아이러니 속에서 감독은 순진한 소년의 눈과 마음을 통해 나치가 저지른 잔혹한 역사를 전해준다.
이런 이야기는 이전에도 있었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1999)에서는 아우슈비츠에 끌려간 유태인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모든 어이없는 상황이) “모두 게임이야.”라며 아이에게 완벽한 상상의 왕국을 만들어낸다. 로빈 윌리엄스가 나왔던 <제이콥의 거짓말>에서는 주인공은 수용소에 끌려가 최후를 맞이할 동료에게 최선의 거짓말을 끝없이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꼬마 조조 래빗은 딜레마에 빠진다. 어느새 누나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유태소녀를 숨겨줄 것인지 말이다. 자신을 보호할 어른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소년은 고민하고 갈등한다.
영화는 어린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끔찍한 혐오(인종에 대한, 인류에 대한 범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삶과 죽음이 대치한다. 나치 광기가 휩쓰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아이가 감당하기엔 인생도, 사랑도 벅찰 뿐이다. 단지, 문이 열리면 서서히 리듬에 몸을 맡기고 흥겹게 춤을 추며 끔찍했던 일들을 잊어야할 것이다. 비틀즈의 "I Want to Hold Your Hand“와 데이빗 보위의 ”Heroes“의 독일어 버전 노래와 영화 초반과 끝에 나온다.
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이 영화로 각색상을 수상한 와이티티 감독은 “<조조 래빗>은 2차 대전에 국한된 영화가 아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증오에 대한 이야기"라며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와이티티 감독은 자신이 히틀러를 연기한 것에 대해 “유태인이 히틀러를 연기하는 것만큼 모욕적인 것이 어디 있겠나”라고 말했단다.
참,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는 이렇다.
Let everything happen to you
Beauty and terror
Just keep going
No feeling is final
네 앞의 모든 일
아름다움도 고통도
그냥 받아들여라
감정의 끝까지
무슨 말일까. 벽장 속 유태 소녀는 매일이 그러했으리라. 살았다 죽었다를 반복했을 것이고, 소년을 통해 기쁨과 슬픔을 공유했으리라. 2020년 2월 5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재환 영화리뷰 202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