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중화제국의 쓸쓸한 뒤안길
내시(內侍), 환관(宦官), 태감(太監)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 존재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다지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거세당하여 남자로서의 역할을 못할 뿐더러, 역사의 고비마다에서 이따금 파토를 놓는 정의롭지 못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TV의 사극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를 막론하고, 내시는 언제나 찬밥 취급은 고사하고 괴물 대접을 받아왔다.
'내시-환관-태감'이라는 직책, 혹은 존재는 중국, 한국 뿐만 아니라 서양(eunuch)에서도 발견되는 역사적 인물이다. 역사에 처음 등장하기로는 전쟁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을 거세하여 노예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존재는 그 후, 궁궐의 내밀한 잡일을 도맡아하는 궁중 서비스맨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특히, 광대한 영토를 가진 중국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황제의 수족을 돌봐야하는 특성상 이들의 존재는 단순히 역사의 뒤안길에서 쓸쓸히 사라질 존재만은 아니란 것이 분명하다.
중국에서는 기원전부터 시작된 이러한 '거세된 남성'의 존재는 황제 지배를 마감하고 공화정이 시작되는 1912년 신해혁명으로 사라진다. 마지막 황제 부의는 '시혜'차원에서 자금성내에 계속 머무를 수 있었고, 그를 떠받드는 태감을 거느릴 수 있었다. 하지만, 1924년 부의가 자금성을 떠나게 되자 마지막까지 남았던 470명의 환관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들 태감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 중 유명한 것은 중국 6세대 감독 티엔 쭈앙쭈앙(田壯壯)의 <大태감 이연영>이란 작품과 홍콩 감독 장지량의 <최후태감>이다. 먼저, <최후태감>부터.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 오래 전에 비디오로 출시되어 쉽게 구해볼 수는 없다. 비디오 자켓에는 홍금보가 감독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그는 제작과 연기를 맡았었다.
1910년대. 중국의 어느 찢어지게 가난한 촌마을의 소년 라이시(來喜). 그 마을에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온다. 관복을 입고, 멋진 가마를 타고,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거지와 다름없는 동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 준다. 소년은 점차 그 사람의 존재가 저 멀리 북경 황제의 주위에서 일하는 환관이란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소년은 무능력한 아버지 때문에 가난이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도 환관이 되기로 작정한다. 그럼, 배고픔에 울지 않아도 되고, 가끔 가족에게 돈을 갖다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아버지를 졸라 마구간에서 자신의 것을 잘라버린다. 그리고, 그 절단된 것을 기름종이에 고이 싸서는 가슴에 품고 북경으로 떠난다. 하지만, 때는 1912년. 신해혁명으로 황제는 더 이상 천자가 아니다. 공화정이 들어선 것이다. 라이시는 결국 경극단에 들어 입에 풀칠을 하며 살게 된다. 다행히 경극단 주인(홍금보) 또한 환관출신이라 라이시의 심정을 이해한다. 어느 날 그가 손님들 앞에서 멋들어지게 여자 역을 하였을 때 장군 하나가 그에게 눈독을 들인다. 이때 라이시 앞에 나타난 옛 고향 여자 친구 초제. 둘은 어릴 적 서로 좋아한 사이였지만 그가 가장 중요한 것을 잘라낸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떠나버린다. 비참한 심정의 라이시는 극단을 뛰쳐나와 궁으로 향한다. 결국 꿈에 그리던 궁중 환관이 된다. 이미 황제가 떠나버린 자금성에서 옛날의 영화만을 기억하는 늙은 환관들뿐이다. 그들 중 많은 환관들은 궁중의 귀한 물건들을 몰래 밖으로 빼돌리고 있었고 말이다. 여전히 옛날의 방식으로 살아가던 이들도 어느 날 몽땅 내쫓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황제의 시종이었던 환관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때 초제가 그의 앞에 나타나고 둘은 기이한 동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플라토닉 사랑? 하지만, 초제가 정말로 사랑했던 유덕화가 나타난다. 그는 혁명군. 그를 뒤쫓는 국민당군(?)의 추격을 피해 기차역에서 숨막히는 추격전을 펼치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라이시는 초제와 그의 연인 유덕화를 도망시키기 위해 기차역에서 엄청난 쇼를 펼친다. 혁명군 유덕화를 쫓는 추적자의 눈길을 돌리기 위해, 라이시는 그 혼잡스런 기차역에서 '변태 같은' 행위를 한다. 자기의 옷을 활짝 펼치고는 자신의 치부를 내보이면 "황제 만세!"를 외치는 것이다.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유덕화는 탈출하는 것이다. 그 지경이 되어서야 여자는 라이시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는 환관의 인간적인 고뇌에 초점을 맞추었다. 영화는 수천 년 황제 지배를 무너뜨리는 신해혁명의 발화점이 된 무창기의가 일어난 해에 시작된다. 중국의 민초가 배고픔에 길가에서 굶어서, 얼어 죽는 일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수천 년 내려오는 그러한 배고픔과 가난 때문에 환관이 되기로 한 사람은 그 당시 너무나 많았다. 유덕화가 단역으로 잠깐 나오는 것을 비롯하여 유명한 사람이 제법 나온다. 라이시를 동정하는 맘씨 좋은 극단 주인 역으로 홍금보가, 라이시의 거시기를 잘라버리는 무식하고 소심한 아버지 역에는 강시영화에서 귀신잡던 임정영이고, <천녀유혼>의 우마는 이 영화에서 라이시와 함께 마지막까지 황제를 모시려는 고지식한 대태감으로 나온다. 일본영사관에서 푸이를 모시는 못된 통역관은 바로 감독과 배우를 넘나드는 장견정이다. 장지량은 <자소>, <유성어>를 감독한 사람이다. (최근 안성기와 유덕화가 공연한 <묵공>의 감독이다)
* 인간 아닌 인간, 환관 *
이 영화를 통해 '환관'이라는 직책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에 있어 '인위적인 거세'의 경우는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전쟁에서 승리한 측이 포로들을 집단 거세시켜 노비로 삼는 것은 흔한 일이다. 또는 극형의 일종으로 궁형이 처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 중 나중에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돈 많이 번 궁중 내시들이 신체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가족형성이라는 원초적인 염원도 있었지만, 다른 방식의 후사책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들 대부분은 증오감에 사로잡히어 집단적 성격이 강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성격이상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청나라 말기에는 이들 대부분이 도박이나 아편에 빠졌던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 동남부 지역에서는 '남색(동성애)'과 더불어, '환관지원'이 일종의 풍속이었는지도 모른다. 명말에는 3천 명의 환관을 충원할 때 전국에서 성기를 자른 2만 명의 지원자가 자금성 앞에 몰려들었다니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물론, 탈락자 대부분은 정말 비참한 거지, 노상강도가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악인도 못되고 선인도 아닌 불가사의 존재였던 환관은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음에는 분명하다.
청말 궁중에는 3천 명이상의 환관들은 황제를 직접 모시는 것부터 시작하여, 청소까지 온갖 일들을 도맡아했다. 역사에서 쉽게 알 수 있지만 이들 가운데에서는 황제나 황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엄청난 권력자로 부상한 사람도 있다. 서태후 시절에는 안덕해나 이연영 같은 환관의 지위와 권력은 대신들 이상으로 막강했다. 황제나 황후를 돌보는 이상적인 환관은 세련된 말투와 미성을 가진 젊은애였다. 상당히 여성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환관들은 후궁의 노리갯감이 되었을 것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 권력의 콩고물을 얻어먹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거세한 환관들은 자신의 물건을 寶貝房이란 곳에 잘 매달아 보관해두었다가 죽을 때 같이 묻는다. 그래야 다음에는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하나 더, 1896년 1회 올림픽을 앞두고 청나라에도 출전 요청이 접수된 모양이다. 그때 원세개는 100미터 달리기 부문에 환관들을 내보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상주했단다. 왜냐하면 환관은 궁중 내를 바쁘게 뛰어다니니 달리기를 잘 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란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