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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환 Oct 30. 2020

[인생] 중국인으로 살아보니

活着 To Live (장예모 감독,1994)

‘중국 5세대감독’의 대표주자로 전 세계 유명영화제를 쥐락펴락하던 장예모 감독은 확실히 중국의 국가대표 영화감독이 되었다. 데뷔 초기에는 인간 심성에 초점을 맞춘 문예물에서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던 그는 이제는 중화제국의 영광과 역사의 위대함을 거침없이 스크린에 담는다. 그런 그의 변신에 감탄(!)하며 그의 1994년 작품 <인생>을 살펴본다. 정말이지 <인생> 한 편이면 중국 현대사를 속성으로 공부할 수 있다. 청 제국이 무너지고, 대륙의 패권을 두고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회전을 펼치고, 마침내 중화인민공화국을 성립했지만 이어지는 광란의 역사를 목도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 길로 뛰어가는 중국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인생>은 중국의 인기작가 위화(余華)의 소설(活着)이 원작이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민초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삶’이란 것이 그렇게도 인류를 속이고, 인민을 농락하고, 역사를 기만했을지라도 끈질기게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영화의 처음이자 끝을 연결 짓는 유일한 메시지이다. 


 위화의 소설은 <붉은 수수밭>의 경우처럼 영화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각색된다. 소설에서 단순한 농부로 묘사된 푸꾸이(福貴)가 영화에선 그림자극의 대가로 묘사된다. 


1930년대의 푸꾸이는 지주계급-유한족속이다. 하루 종일 도박판에서 소일하다 결국 가산을 탕진한다. 어린 딸과 젖먹이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던 아내가 돌아오고, 그는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 바로 중국 전통 그림자극(皮影劇)을 하게 된다. 일본군이 물러간 자리에서 국공내전이 시작된다. 푸꾸이는 국민당군에 끌려가서 군인들을 위해 그림자극을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엄청나게 추운 겨울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온통 국민당군의 시체뿐. 국민당군이 죽고 뿔뿔이 도망간 그 공백을 차지한 것은 이번엔 공산당군이다. 이제 푸꾸이는 공산군을 위해 그 그림자극을 보여줌으로써 생을 유지한다. 그러면서 전쟁은 끝나고 푸꾸이는 꿈에 그리던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 공리는 아침에 뜨거운 물을 가가호호 배달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린 딸 봉하는 병마의 후유증으로 벙어리가 되어 있었지만 또랑또랑한 아들놈 유경이랑 네 가족이 행복한 순간을 맞는 듯하다. 그가 오래 전 도박으로 탕진한 가산과 큰 저택을 물려받아았던 사람이 이제 시대가 변해 지주라는 죄목으로 총살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푸꾸이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는 인민혁명군을 위해 공연을 한 무산계급 출신의 혁명동지로 자신의 신분이 변해 있음을 정말 다행으로 여긴다.


중국의 현대사는 이어진다. 이번엔 대약진 운동이 시작된다. 3년간 이어진 자연재해를 버텨낸 이들은 이제, 일거에 공산주의 부국을 만들기 위해 무모한 도전에 나선 것이다. 동네마다 용광로가 만들어지고, 집집이 쇳조각들이 긁어모아지고 모두들 제철 제련작업에 투입된다. 푸꾸이의 똘망똘망하던 아들이 희생당하는 것이 이 시대였다. 잠결에 학교에 불러간다. 높은 분이 지도 나왔다기에 나가서 제련작업을 도와야하기 때문이다. 푸꾸이는 그런 애처로운 어린 유경이를 업고는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이야기한다. 


"유경아 잘 들어라. 지금은 우리 집이 비록 병아리같이 작지만. 병아리가 크면 닭이 되고, 닭이 크면 양이 되고, 양이 크면 소가 된단다." 유경이가 묻는다. "소가 크면 뭐가 되죠?" " 음.. 소가 크면 공산주의가 된단다. 공산주의가 되면 매일 고기와 만두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단다.." 그날 유경이는 담장에 누워 자다가 후진하는 트럭 때문에 무너진 담벼락에 깔려 죽는다. 



 다시 역사는 흐르고 문화대혁명의 시대가 온다. 푸꾸이의 말 못하는 딸 봉하가 홍위병 청년과 결혼을 한다. 봉하가 병원에서 출산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성격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의사란 존재는 모두 반혁명반당분자로 하방당하고 자아비판 당하는 신세가 된다. 새파란 학생들이 혁명완장을 차고 병원을 차지한다. 결국 봉하는 아기를 낳다 과다출혈로 죽는다. 하혈을 하지만 어린 학생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때 며칠을 굶은 산부인과 의사가 고깔모자(반당분자의 징표)를 뒤집어쓰고 병원에 끌려왔지만 만두를 급하게 먹다가 죽을 고비를 당하는 장면은 블랙코메디의 진수이다. 푸꾸이는 새조국 건설을 위해 딸과 아들을 바친 셈이다.


 몇 년 후 병석에 누워있는 푸꾸이의 처가 사위와 손자의 생일 축하인사를 받는다. 그들이 유경이와 봉하의 무덤에 다녀오는 길에 손자를 위해 병아리를 산다. 푸꾸이는 오래 전부터 보관하고 있던 피잉쥐 도구를 담아두는 궤짝에 병아리를 담으며 감개무량하게 이야기한다. "병아리가 자라면 닭이 되고, 닭이 자라면 양이 되고, 양이 자라면 소가 된단다." 손자가 묻는다. "소가 자라면 뭐가 되죠?" 그러자, 공리가 그런다. "그 다음엔 너도 어른이 되는 거야." 손자가 아주 기뻐서 그런다. "그럼 내가 어른이 되면 소를 타고 다니나요?" 이에 푸꾸이가 그런다. "아니. 네가 어른이 되면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다닐 거야. 그때가 되면 세상 살기가 지금보다 좋아질테니까."  영화는 그렇게 희망적인 대사로 끝난다.


이 영화는 깐느 심사위원대상과 푸꾸이를 연기한 갈우(꺼요우)가 남우주연상을 받는 등 서구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중국현대사는 결국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투쟁이라는 외적 변천에 관계없이 실제 인민은 열심히 제 살길을 찾아 살아간다는 간단한 진리를 보여준다. 겉보기에는 현대사 관통이지만 한편 보면 지독한 풍자극임에 분명하다. 지금이야 웃으며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지만, 당사자들은 어찌 죽음과 희롱한 그 시절 그 때를 잊을 수 있을까. 푸꾸이는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운명을 헤쳐나간 적은 없다. 도박에서 지는 것도, 국민당군 공산당군에 차례로 부역하는 것도, 그리고 아들을 죽음의 운명으로 몰아넣는 것도 모두 상황이, 현실이 그를 그쪽으로 몰아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그림자극을 위해 목숨 걸고 지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리고 그 현실이란 것이 죽음과 매시간 희롱하는 것들이기에 우리는 더욱 범상치 않은 보통 인민의 행동과 운명을 동정적인 시선으로 지켜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장예모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은 지난 수십 년 그런 바보 같고, 우스꽝스런 집단광기의 희생자는 바로 중국 인민이었음을 보여주고, 나아가 그러한 운명조차 받아들이는 인민이 있기에 사회는 진화하고 국가는 발전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광란의 중국역사를 보는 감독의 눈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병원에서의 그 지독한 부조리. 의사가 있지만 결코 도움이 안 되고, 자신만만한 홍위병 여학생의사가 있지만 믿을 수 없고, 모든 것이 되는 듯 안 되고, 안 되는 듯 결국은 다 되는, 그리고 새옹지마처럼 반복되는 기나긴 운명의 희롱은 중국인들을 지치고 숙명론적으로 길들였을지 모른다. 남은 것은 삶에 대한 신념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뿌리 깊은 불신과 체념일지도 모른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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