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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환 Oct 16. 2020

[집결호] 중국영화, 한국기술을 만나다

중국이 만든 '이른바' 항미원조전쟁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세워졌다. 공산당의 대륙 접수 후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둘 다 신생국가로서 위태로운 시기에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625(육이오)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은 70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전쟁터로 연명하고 있다. 중국은 이 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부르며 북한과의 혈맹관계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올해(2020년) 70년을 맞아 중국에서는 성대한 기념행사와 함께  CCTV에서는 다큐멘터리를 마련 했고,극장가에는 오성홍기 휘날리는 영화들이 관객을 끌고 있다. 이 시점에 조금은 애매한 영화를 한 편 소개한다. 2007년 중국에서 개봉된 <집결호>라는 작품이다. 


<집결호>는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다. 개막식에 맞춰 풍소강(펑샤오깡)과 주연배우들이 대거 부산을 찾아 영화홍보 활동을 펼쳤다. 중국의 메이저 영화 제작진이 한국을 찾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그리고 마지막이었다!)


<집결호>의 시대적 배경은 그들(중국)이 말하는 ‘해방전쟁시기’이다. 1945년 일본의 항복 선언 후 중국 대륙의 운명을 두고 모택동의 공산당과 장개석의 국민당이 혈전을 펼친다. 주인공 구쯔디(谷子地)는 중대장(連長). 영화가 시작되면 <라이언 일병구하기>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봤음직한 처절한 공방전을 보여준다. 어느 건물 안에선가 숨어서 전우를 하나씩 쏘아 죽이는 저격병에 쩔쩔 매고, 기관총 소사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후 겨우 진지를 접수한 구쯔디 중대장에게 잠시 쉴 틈도 없이 사단장의 특별 임무가 주어진다. 사단이 이동할 동안 특정지역을 사수하라는 특명이다. 가까스로 전투에서 살아남은 47명의 용사는 ‘곧’ 퇴각신호(집결호)가 울릴 것이라는 사단장의 명을 받고 죽음의 고지에 들어선다. 엄청난 화력 속에서 처절한 공방전이 또다시 펼쳐진다. 중대원들이 하나둘 쓰러지지만 구 중대장은 끝까지 진지를 사수한다. 결국 구 중대장 한 사람만이 살아남고 모든 중대원이 몰살한다. 그는 그 순간까지 퇴각나팔소리(집결호)를 듣지 못했다. 아니 들을 수가 없었다. 영화는 이후 구 중대장이 단지 실종 처리된 47명의 중대원들의 명예 찾아주기에 집중된다. 당시나 지금이나 중국에서는 실종자는 실종자일 뿐. 전사자는 열사(烈士)로 국가적 영웅대접을 받는다. 


영화 전반부를 장식하는 전투 장면은 모든 전쟁영화가 그러하듯이 장엄하고 비장하며 보편적 휴머니티를 보여준다. 적과 아군의 차이만 있을 뿐, 그 군복과 계급장 표식만 떼어 놓는다면 전쟁장면은 관객에게 애국심보다는 허망한 인류역사를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는 양금원(楊金遠)의 소설 <관사>(官司)를 <국두>, <귀주이야기>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겸 시나리오 작가 유항(劉恒)이 시나리오로 옮긴 것이다. ‘관사’란 말은 소송이나 법적투쟁을 뜻한다. 열사가 되지 못하고 실종자로 처리되어 마땅히 받아야할 명예를 누리지 못하는 망자의 한과 유족의 분노를 달래주기 위해 나선 중대장의 ‘권리 찾기 투쟁기’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확실히 <라이언 일병 구하기> 혹은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전쟁의 장엄함과 전쟁을 치르는 병사의 심정을 다루는데 주력한다. 그리고 반이 지나면 영화는 국방부, 아니 국가보훈처 영화가 된다. 


 <집결호> 영화에서는 중반쯤에 ‘한국전쟁’이 등장한다. 국공내전 당시 그야말로 혈전을 펼친 구즈디는 ‘항미원조전쟁’에도 투입된다. 1951년 그는 중부전선에서 미군의 보급로를 끊는 작전에 나선다. 한국군 복장을 입고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대원이 지뢰를 밟게 되고 구즈디는 다시 한 번 희생을 마다않고 작전을 성공시킨다. 

 소재로 보자면 불편한 구석이 있을 수 있다. 적성국 군인의 혁혁한 전과가 등장하는 셈이니 예전 같았으면 보안법 위반 영화인 셈이다.  [집결호]는 한중영화교류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한국전쟁’을 담은 ‘중국 메이저영화’이면서, 한국의 영화제작 기술진이 대거 참여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폭발, 특수효과, 분장, (시체 등) 소도구, 전투액션 등에서는 한국영화인들이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쌓은 노하우를 십분 전수시켜 주었다. 


중국 특유의 혁명의식 고취 ‘주선율’ 이야기에 아시아 영화선진국 한국의 영화기술이 결합된 특별한 영화가 바로  <집결호>이다. 한국전쟁 발발 70년, 그들이 말하는 ‘항미원조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아 중국이 펼치는 프로파간다를 보면, ‘전쟁의 생채기’는 우리 민족만의 문제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셈이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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