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예모-공리의 역사적 스캔들 (feat.진시황)
영화 <진용>(秦俑)은 홍콩의 인기 작가 이벽화(李碧華)가 쓴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이벽화의 다른 작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영화판에서 인기가 높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용’ 원작 말고도 <패왕별희>, <인지구>, <청사>, <천도방자>, <반금련 전세금생>같은 작품이 있다. 역사의 외피를 두른 대중소설이다. 중국의 파란만장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이루지 못한 사랑, 애틋한 그리움이 꽃핀다. 문혁이나 역사 같은 거창한 굴레 속의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관계가 흥미롭게 재현된다.
지난 2003년 장예모 감독의 <영웅>이 극장에 개봉될 때 다시 떠오른 영화가 바로 <진용>이다. 그동안 공리-장쯔이를 데리고 중국의 아름다움과 인간미 넘치는 소박한 감동을 안겨주던 장예모는 양조위, 장만옥 등 엄청난 개런티를 자랑하는 대 스타들을 한데 모아 진시황 시대의 전설과 신화를 영상화했다.
장예모 이전에도 진시황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꽤 된다. 2000여 년 전 사분오열(아니 정확히는 일곱 개의 나라로 나뉘어져 군웅이 할거하던) 중국을 통일시킨 위대한 황제 진나라 시황제는 여러모로 극적인 삶을 살았기에 소설이나 영화로 옮기기에 족하다.
진시황의 어떠한 점이 매력이냐 하면 진시황은 어릴 적 볼모로 다른 나라에 붙잡혀 있는 신세가 된다. 그가 황제가 아니라 '진(秦)나라의 왕'자리라도 차지하게 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다. 당시 최고의 장사꾼 여불위(呂不韋)는 장차 앞날을 도모하고 투자한(정치권에 연줄 되기!) 대상이 바로 진시황의 아버지 자초(子楚)였다. 보잘 것 없던 그가 진의 왕(장양왕)이 되었다. 여불위는 자신의 애첩조차 장양왕에게 바친다. 그 애첩이 낳은 자식이 바로 영정(瀛政). 즉, 내일의 진시황이 되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보아 진시황의 생부는 여불위가 되는 셈! 나중에 시황제는 자신의 생부 여불위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진의 왕이 된 영정은 한(韓) ·위(魏) ·초(楚) ·연(燕) ·조(趙) ·제(齊) 나라를 차례로 정복하고 중국 최초의 통일 대국을 세운다. 그리곤 그의 왕통이 대대손손 이어지라는 뜻에서 자신을 '진 시황제'라고 부르다한다. (자기 뜻대로라면 2대황제, 3대황제... 대대로 통일중국을 이끌어가야 했을 것이다)
진시황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전한(前漢)시대 역사가 사마천의 역저 [사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영정이 왕권을 잡고 통일시키는 과정에서는 피바다를 이룬 살육이 수반되었었고, 멸망해가는 나머지 왕조들의 절망적인 투쟁이 뒤따랐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자객 '형가'(荊軻)의 이야기와 영정이 어린 시절 인질의 신세질 때 사귀었던 거문고 연주의 달인 '고점리'이다. 형가와 고점리와 진시황제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덧붙인 이야기가 바로 진시황제를 다룬 영화의 공통점이다.
진시황제의 공격 때문으로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연나라의 태자 '단'은 최고의 칼잡이인 형가에게 진시황 암살을 의뢰한다. 형가는 묘책을 써서 진시황제 앞까지 나가서 칼을 뽑기까지는 성공하나 암살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물론, 형가도 죽고, 연나라도 절멸당한다.
영화 <진용>에도 시황제를 암살하려는 무리가 등장한다. 이를 막아선 인물이 바로 몽천방. 몽천방은 진시황제의 무덤을 만드는 책임자였다. 피라미드도 그러하지만 대규모 건축물을 만드는 데는 수십 년의 세월은 족히 걸린다. 진시황도 자기가 죽기 수십 년 전부터 자신이 묻힐 대규모 묏자리를 만든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암살범의 칼날을 막아선 몽천방은 그날부터 진시황의 호위병이 된다. 그리곤, 불로장생 약을 구하려는 동남동녀에 포함된 동아(공리)를 사랑하게 된다. 황제의 여자를 사랑하다니! 결국 이루지 못한 사랑을 내세에서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동아는 불 속으로 뛰어들고 몽천방은 동아가 죽기 전에 입에 물려준 환약을 먹은 채 진용(秦俑)이 된다.
시황제의 무덤은 규모가 엄청나다. 2,000년 동안 지하세계에 묻혀있다 1974년에 발굴되기 시작한 이 대건축물은 고고학과 역사학에 있어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진시황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진나라가 영원도록 군사대국으로 남아있기를 기원해서인지 사람 크기와 똑같은 진흙군사를 만들어 묻어두었다. 그것이 바로 진용이다. 지금 중국 섬서성에 가면 그 엄청난 규모의 진용을 볼 수 있다.
영화 <진용>은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던 동아와 몽천방 장군의 시대를 뛰어넘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 2,000여 년이 흐른다. 1930년대. 진시황 무덤을 둘러싼 도굴꾼과 3류 여배우, 그리고 부활한 '진용' 몽천방의 이야기가 두 번째 챕터이다. 2000년 만에 부활한 고대 병사의 눈에 비치는 현대의 모습. 마치 뉴욕 도시 한복판에 던져놓은 타잔이 겪었을 모험담이 펼쳐진다. 눈이 부셔 동그란 선글라스를 한 몽천방의 모습. 그가 장예모이다!
동아가 몽천방 장군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은 또다시 이별을 해야 하고 무정한 세월이 다시 한참이나 흐른 뒤 이들은 다시 만난다. 일본인 관광객 동아와 병마용 작업부 몽진방의 신세로 마주친다. 관객들은 그 시대를 뛰어넘는 절절한 사랑에 찡한 감동을 느낀다.
이 영화의 촬영감독은 포덕희(피터 파우)이다. 나중에 <와호장룡>으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는다. 이 영화의 감독은 장예모가 아니다. 장예모는 몽천방 장군 역을 맡았다. 장예모는 이전에 진개가(천카이거) 감독의 <옛우물>(老井)이란 작품에서 열연을 하여 동경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장예모의 뛰어난 연기도 볼만하지 당시 '장예모-공리'의 스캔들도 유명한지라 이 영화 여러모로 재밌다.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정소동이다.
<진용>은 장구한 중국 역사와 풍부한 문학적 기반 위에 할리우드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홍콩 영화가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인 셈이다.
이 영화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진시황이 동쪽 봉래산으로 불로장생의 영약을 구하러 동남동녀 500명을 보내기로 한다. 차출된 여자들의 명단을 부를 때 여자 주인공 '동아'(공리)를 부르기 바로 직전에 불리는 여자 이름이 바로 '이벽화'이다. <진용>은 2011년 <고금대전진용정>(古今大戰秦俑情)이라는 제목의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