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칭 서평>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에 다니다 결혼했다. 결혼 후에 남편이 직장을 관두라고 했다.
아이를 낳자마자 남편의 잇따른 사업 실패로 평생 갚아도 모자란 엄청난 빚에 파묻혔다.
하도 막막해 몇 번이나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다.
자신이 사업하다 망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녀는 남편을 잘못 만나 인생 배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빚더미만 바라보며 남 탓을 하다 보니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신세타령 무능력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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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녀는 딸아이를 위해 구인광고를 뒤적였다. 찾아간 곳이 화장품 회사였다.
영업사원 교육시간에 사장은 정신교육부터 시켰다.
"내 생각이 머무는 곳에 내 인생이 있고 현재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내 탓입니다.
남 탓 하는 습관부터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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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 화장실에 달려가 소리 내어 울고, 세상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세일즈 여왕이 되었고, 입사 12년 만에 부회장 자리에 우뚝 설 수 있었다.
- 도서 왓칭 중 -
한 동안, 이런 이야기의 작품이 신드롬이었던 때가 있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경단녀'가 이혼을 당한 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남자 주인공의 회사에 우연히 들어가는 이야기, '돌싱녀'가 이혼 후 모든 일이 풀리며 연하 남주를 만나 전남편이 질투감에 돌아오는 이야기. 등등 한 작품이 아닌, 여러 작품에서 비슷한 포맷으로 이뤄졌었다. 중요한 건, '남자를 새로 잘 만나 행복해진다'가 아니다. 이 작품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같이 동일했다.
'경력이 단절된 여성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 '육아 휴직 이후 돌아갈 자리를 잃은 여성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여성들을 주인공 캐릭터로 잡으면서 시청자들에게 심어준 감정이 있다. 연민과 안쓰러움이다. 위의 구절에 나온 '그녀'처럼 남자를 잘못 만나, 결혼을 잘못해, 등등 각양각색 소재를 녹여 관객들이 '그녀'에게 감정 이입해 남편을 공격하는 포지션으로 만들어간다.
나 또한 동감했었다. 남편 캐릭터가 원수로 보였고, 여자는 무슨 죄야 같은 시선으로 바라봤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위의 '그녀'는 어떻게 회사 구호의 한 문장을 듣고 저리도 달라질 수 있었을까? 상황이 달라진 건 없었다. 그녀는 입사를 한 이후가 달라졌지, 저 순간에도 여전히 빚더미는 진행 중이었다. 나는 이를 보고 느꼈다. 무조건 '남 탓'이 노답이라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을 해야 함을 보았다.
'그녀'도 그렇고, 드라마 속 주인공들도 그렇고, 인간은 '자유의지'라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심지어 '정략결혼'이라 해도 그렇다. 자유의지로 도망갈 수 있고, 다른 사람이랑 혼인신고를 먼저 하는 방법도 있다. 결국 억지로 부모 등살에 떠밀려했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내 선택의 시작은 '자유의지'였다는 것이다.
집 나간 남편을 제 발로 돌아오게 한 이야기
어느 날 평소 꼬박꼬박 일찍 귀가하던 남편이 회식이 있다고 먼저 자라며 전화를 걸었다.
1시가 넘고, 2시가 넘어가며, 친구가 귀띔해 준 얘기가 귓가에 생생했다.
"새벽 3~4시 넘어도 귀가 안 하면 의심할 만한 행동을 한 거라고 보면 맞아."
남편은 새벽 5시가 넘어서야 들어왔고, 기다린 아내를 보고 대뜸 화를 내며, 이상한 여자 다 보겠다는 투로 내뱉고 그냥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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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튿날 남편의 와이셔츠를 빨려다 눈이 홱 돌았다. 어깨 근처에 빨간 립스틱이 묻어있었다.
"남편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어."
일단 신뢰가 깨지자 남편의 모든 것을 따져보며 모조리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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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남편의 부정적인 면만 보니, 서로가 부정적인 면만 보게 되었다.
남편은 귀가시간이 늦어지다 못해, 아예 안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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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녀는 거울을 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양미간에는 홈이 패어 있었다.
"남편 잘못 만나 내 인생이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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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신과 의사로부터 처방을 받았다. 연락이 오면, 오로지 남편에 대한 긍정적인 말만 해주라고 했고, 남편의 연락, 귀가 횟수를 꼼꼼하게 기록해 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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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됐을까? 남편은 이후로 아내와의 통화가 즐거워져 연락을 자주 하게 되었고, 6개월 만에 아내를 찾아와 간절한 표정으로 용서를 빌었다.
- 도서 왓칭 중 -
처음엔 납득이 안 갔다. 죄지은 사람 따로 있고, 왜 죄지은 사람을 피해자가 어르고 달래줘야 할까?
하지만, 이내 진짜 피해자가 된 '그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의 죄를 책망한다고 해서 행복을 얻을 것도 아니었고, 무조건 적으로 '내가 잘못한 게 있을 거야.' 내 탓으로 돌려서 회피한다면 이보다 더 최악의 상황만 야기했을 것이다. 그녀는 결국 원하는 남편과의 행복한 생활을 되찾았고,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관점으로 회복된 결과이다. 이처럼,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남편을 위해서도 아닌, 나를 위해서 나 자신을 남으로 본다면 이렇게 고차원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게 된다.
이 말의 뜻이 참 와닿았다. 최근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아빠는 '이석증'으로 피곤함을 느끼시며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다. 아빠의 생신 날이라 통화를 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과거였다면, 이런 생각을 먼저 했었다. '내가 빨리 성공해서 갚아드려야 하는데.', '내가 부족한 게 문제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아빠를 '관찰자'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빠는 아빠 스스로를 골병들게 하고 있구나. 아빠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끌어오고 있구나. 하지만, 아빠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빠의 가정환경 또는 살아온 삶에서 이어온 문제일 수 있겠구나.
이처럼 아빠라는 사람을 아빠가 아닌 '남'으로 관찰해 보니, 나에게 저런 생각이 쌓여갔다. 이 문장처럼 나에게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결핍증이 있다. 바로 '완전한 독립'이다. 나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택해온 환경이 그러했다. 과거에는 내가 택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나의 환경 탓만 해왔었다. '나는 왜 막내일까?' '내가 첫째였다면 달랐겠지?' '내가 소녀가장이었다면 나도 달랐겠지?' 철저히 환경을 탓해왔고, 끌어당김 법칙을 알게 된 뒤로는 '지원받아온 환경'으로 계속 독립이 아닌 '지원'을 끌어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임을 일깨웠다. 책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나는 이렇게 바라봐야 옳다. '내가 행복한 가정에 늦둥이로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구나.' '부모님이 나를 위해 애써주신 것을 무조건적으로 갚아야지 할 게 아니라 먼저 감사해야 했구나.' '죄책감 이전에 감사함을 스스로 느껴야 했구나.' '그럼 이젠 스스로 해나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야겠다.' '죄의식을 버리고 감사함으로 인정하고 다시 나아가야겠다.'
다시 한번, 정리해야겠다.
모든 선택엔 '자유의지'가 시작이었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해, 나를 남으로 바라보고 아껴줄 것.
내 생각이 머무는 곳을 확인하고 내 인생을 확인하고 나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