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린 Oct 20. 2023

두 사람의 다른 고통 대처법

<고통도, 행복도 내 시선 안에 머무르다>

현재 나는 코로나 2회 차를 보내고 있다. 내가 지난 코로나를 겪은 이후에 느낀 사유를 예전에도 이곳에 남겼었다. 그때와 현재의 나는 또한 많은 변화가 생겨났음을 직시할 수 있었다.



https://brunch.co.kr/@reviewrental/29






그 당시에는, 코로나가 흔했기에 의무 격리가 필수였고, 내가 외부 세미나를 갔던 당시 걸렸던 지라, 죄의식이 더 힘들게 만들었다. 물론 나도 가서 옮은 사람이지만, 거기서 아프기 시작할 때 더 빨리 나왔어야 했단 생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이때의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황홀했고 고통스러웠다.



2023 Again COVID-19


현시점의 코로나에 위기의식을 잃고 있었고, 언제 걸린 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반려견인 아기 병원과 산책만 다니며 외출이 일절 없던 언니는, 코로나에 걸릴 명분이 없었지만 확진이 되었다.


이로서, 나는 또 한 번의 큰 죄의식을 안아야 했다. 언니도 최근 외출이 잦았던 내가 무의식 감염이 되어 자신에게 옮긴 것이라 확신했다. 나도 이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가지도 않던 사람이, 남에게 옮아서 정작 퍼뜨린 보균자보다 더 고통 속에 일상을 보내는데 기분이 괜찮을 리 만무했다. 이로서 아기의 케어를 내가 어느 정도 도맡았기에, 나의 루틴도 무참히 깨졌다.






COVID-19 Day.1


나와 언니 두 사람 모두 루틴에 의해 살고, 죽던 사람인지라 코로나는 두 사람에게 다른 의미로 치명타였다. 언니는 처음 걸린 사람으로서 고역이었고, 나는 극도로 예민해진 언니와 아기를 케어함에 고역이었다. 과거와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나의 관찰자 인식이다. 모든 상황을 나의 잘못으로 치부해야 할 상황은 맞으나,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미안함은 미안함으로 두고, 나의 감정은 분리해서 살피었다.



COVID-19 Day.2


이때까지 나는 무증상 감염자로서 언니의 고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전부 헤아리진 못했다. 단 한 가지 나 자신이 초라했던 지점은 나의 운전 불가 능력이었다. 장롱 면허가 처음으로 후회되었다. 내가 아파도 언니가 운전을 하고, 언니 본인이 아파도 스스로 운전해서 병원을 가는 독특한 상황이 마음에 걸렸다. 평상시 실용성에 의의를 높게 두는 편이었는데, 운전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니즈를 잡지 못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나중에 가족을 위해서라도 운전은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COVID-19 Day.3


아차 싶었다. 무증상 보균자 죄인인 나도 재감염인지 불확실하나, 발열 증상이 시작되었다. 열이 38도를 육박하고 있었고, 아침부터 씻기에만 1시간을 사용했다. 정신력은 고사하고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언니도 고통을 호소하는 가운데 나는 아기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다녀왔다. 목 통증이 가라앉은 언니가 이후에 내 상태를 보고 놀라며 자신의 약을 주었고, 나의 발열도 금방 잠재울 수 있었다.






코로나를 보내는 두 여자, 다른 태도


나는 코로나를 보내는 동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이건 나만의 주문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잠, 일, 쉼 중 무엇이 필요한가?" 자문자답 후에 그대로 따르는 방식이다. 의외로 나의 답은 일이었다. 일을 해야 비로소 죄의식을 잠시 내려둘 수 있었고, 나의 정신력을 바로 잡을 기회가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보는 언니는 어땠을까?

그녀는 아침에 기상하면 신음을 뱉으며 한숨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2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한숨에 나도 같이 동요될 것인가? 동요되지 않고 나의 할 일을 바라볼 것인가? 나쁘게 비치겠지만, 나의 선택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후자였다. 그 한숨에 동요되는 순간 나도 똑같이 목 통증을 그대로 고통으로 흡수할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이번엔 그러기 싫었다.


언니가 평소 면역력이 약한 편이라, 나보다 고통을 몇 배로 느낄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고통에 매몰되는 모습은 나에겐 조금 충격으로 다가왔다. 평소 냉철한 정신의 소유자인 사람이었기에 더 그랬다. 자신 스스로 병이 낫지 못하도록 온몸을 다해 막아서는 행위가 계속 시름시름 앓기만 하는 것이다.


<<왓칭>>이란 책을 보며 느낀 것은 고통도, 행복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따라 미립자가 변한다는 것이었다. 난 나의 고통을 최대한 나의 다른 행복으로 치환하려 애썼다. 여전히 목이 아프다. 하지만 열이 내린 그날 밤 새벽 3시까지 작업을 했다. 어땠을까? 행복감이 올랐다. 목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집중했기에 그 작업 시간이 유일하게 언니의 부정 에너지로부터 나올 수 있던 기회였다.






살면서 우리는 2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고통받을 것인가?
행복을 위해 노력할 것인가?

돈도 들지 않는,
인식의 전환만으로 가능하다 했을 때,


선택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은 '자유의지'이다. 코로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 또한 의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선택은 자유의지가 시작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