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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 EVOL Sep 18. 2015

사랑.14. 자존심. 사랑.

 나는 자존심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자존심의 뜻도 모르면서. 남이 나를 약하게 보거나, 우습게 보거나, 모욕하는 것에 대해 참지 않는 것. 그 참지 않기 까지 기준이 높지 않은 것을 나는 자존심이 세다고 여겼다. 


 이 자존심을 나는 사랑 앞에서도 내세웠다. 


나는 자존심이 이만큼 강하니까 나를  자극하지 마.  자극한다면  책임질 수 없어. 왜냐면 나는 자존심이 세니까. 그걸 지키기 위해서 더욱 강하게  반응할 거야. 


 이런 식이었다고 할까.  쓸데없는 자존심을 너무 세웠다. 

 사소한 일로 다투고 자존심을 내세우고 먼저 사과하는 일이 없었다. 

사과 하기에는 내 자존심이 너무 세니까.

 사랑하는 마음에 나에게 충고를 해주면, 화를 내었다. 

내 자존심이 세니까 나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마.

  이별에 있어서도 나는 자존심이 세니까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가 나를 향한 지적으로 들렸고, 다툰 이후 사과하는 것은 약함의 표현이며, 이별 앞에서  끄떡없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유교적이고,  남자다움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나는 강해 보이고 싶었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도 아닌데 스스로가 그렇게 믿었다. 


 바보다. 앞에서 그렇게 강한척 하고 뒤에서 혼자 울었다. 사실은 엄청 약하면서.  쓸데없이 자존심을 세웠다. 그게 자존심이 아닌 줄도 모르고. 

 

 이별 통보를 아무렇지 않은 멀쩡한 얼굴로 하고, 집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 그 사람이 찾아왔다. 아프다고. 도대체 왜 헤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너무 밉지만, 그런데 사랑한다고. 


 헤어짐의 이유 역시 바보 같았다. 이 사람이 점점 내 마음속 깊이 들어와서 숨기고 싶은 모습까지 다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정말 바보다. 


 그런 바보가 밉지만, 사랑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 사람 앞에서 벌거벗은 것 같이 되었다.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올바르게 솔직하게 말하는 그 사람의 마음이 나를 너무 부끄럽게 했고,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무장했던 것이 순식간에 해제되었다. 


 펑펑 울었다. 그 사람 앞에 무릎 꿇고 울었다. 미안하다고 내가 바보라서 그렇다고. 겁이 났다고. 강한 척 다 하고 다니지만 점점 약한 마음을  너한테 들키고 있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고. 그것들 다 들키고 나면 어디에서도 강한 척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겁이 났다고. 


 그렇게  쓸데없는 자존심을 눈물르 흘려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불을 발로 찰 것만 같다. 바보 같이 행동한 것도 부끄럽고, 자존심도 뭣도 아닌 것을 자존심이라고 세운 것도 부끄럽다. 바보 같은 짓으로 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미안하고,  바보라서 미안하다. 


  물론 지금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 사람은 전가의 보도를 손에 넣었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이길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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