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철학자 강신주 씨가 강연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것 같은데, 본 강의는 생각 나지 않고
사랑에 관해 언급했던 부분만 생각 난다.
사랑에 관해 이야기 하는 중에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인용한다.
입으로 먹고 항문으로 배설하는 것은 생리이며
결코 인간적이라 할 수 없다.
그에 반해 사랑은 항문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하는 방식에 숙달되는 것이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로 푸르게 하지 못한다.> 이성복
사랑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배고플때 먹고 싸고 싶을 때 싸는.
육체적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할때 하는.
식욕과 성욕등의 기본적인 욕구에 사랑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배가 고플때 내가 먹지 않고 남에게 주는 것.
공동으로 무언가를 원하거나 갈망하는 욕구가 있을 때 나의 불편을 감수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
혹여 그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그것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 하는 것.
사랑과 돈 앞에서 나를 생각해 쟁여두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생각 하지 않고
오늘 모두 그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 강의를 보는 동안 나는 어렵고 불편했다. 고민하게 만들었다.
좋은 인문학적 강의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며
사람을 흔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굉장히 불편하고 어려웠다.
저 사람이 말하는 사랑이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더라. 내일을 생각 하지 않고 바로 지금 그 사람이 앞에 있는 현재에
모든것을 충실하고 있는가. 오롯이 그 사람만을 생각 하고 바라 보고 있는가.
전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더라.
참 어렵다. 정말 사랑하는데 무엇이 사랑인지 정의 내릴 수 없고.
설령 정의 내린다 하더라도 불변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또 고민하겠지.
참 어렵다. 그리고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