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연심
월요일아침입니다.
오늘은 저에게는 특별한 날입니다.
카카오톡 디데이 알림설정이 D+90일을 표시해주었네여.
90일이 지났습니다. 어느 누군가는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66일이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그 66일을 잇기 위해서 각종 프로젝트를 하고 또 실행해 옮기기도 합니다. 하여 90일이 지났으니 제게는 이 습관이 몸으로 체득되었을까요? 그 90일동안 해 왔던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금주입니다.
100일을 기념하여 글을 쓰려고 했는데 저에게는 오늘 90일이라는 숫자, 약 3달이라는 시간이 더 머리에, 가슴에 꽂혀서 이렇게 그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술을 조금씩 먹기 시작하였으니 벌써 술과의 인연도 30년이 다 되어갑니다. 30년전 처음 술을 먹었을때도, 마지막으로 술을 먹은 날에도 저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블랙아웃입니다. 블랙아웃은 30년동안 계속 있어 왔습니다. 간혹 절주를 하며 조금씩 마셨을 때는 온전히 그날을 기억하지만 거의 8할은 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좋아 이사람 저사람의 술잔을 받고 건네고, 또 받고 건네면서 술을 참 많이도 먹었습니다. 술 취해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은 정말 차고도 넘칠 지경이고 위험에 노출된 적도, 병원에 실려간 적도 많았었지요.
40대 중반을 넘어 이제 마흔하고도 여섯을 넘게 되는 12월 어느날.
이제 이렇게는 안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도 너무 힘들어하고 두아이들에게도 민망한 일이니까요
주말이면 아이들과 말놀이, 끝말잇기 놀이를 하곤 합니다.
"장기-기술"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술병" 9살 서현이가 이야기합니다.
"술래잡기도 있잖아, 그걸로 해, 술병이 뭐야.."투덜거리며 내가 얘기해요
"술병도 되잖아. 아빠. 아빠가 마시는 거, 파란거..." 서현이의 말에 할 말이 없습니다.
술을 끊는 일은 사실 쉬웠습니다. 90일이라는 시간동안 송년회,신년회, 각종모임의 뒷풀이, 거래처와의 술자리, 사람들과의 만남 등은 계속 이어왔음에도 먼저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끊었다는 말을 하면 대부분 거의 술을 권하지 않더라구요.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술자리에서 술을 안 먹는 것이 고통스럽거나 부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아, 그래서 알게되었습니다.
그동안 술을 못먹는 내가 월화수목금금금 그렇게 나를 혹사시켜왔구나.
그 단순한 사실을 지금에서야 이렇게 느끼게 되네요.
원래 혼자 있을 때에 술을 먹지는 않았고 특별하게 술이 찾은 기억은 없습니다.
아! 그래서 느끼게 되었네습니다.
그동안 나는 술이 좋아서 먹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잇고 관계를 맺을려고 했던 것이구나.
그런데 술을 먹으면 먹을수록 내가 잇고자 하는 사람들과 주위사람들을 내가 엄청이나 불편하게 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부터 술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된지 30년, 이제 그 시작을 90일 하였습니다.
첫잔을 들지않는 습관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내 몸을 혹사시켰던 30년의 세월만큼은 치유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의 30년은 이제 하루하루가 쌓여가면 또 이뤄지겠지요.
첫잔을 들지않으면서 내가 원하던 아내와의 관계도, 서현이와 재현이의 관계도 많이 좋아짐을 느낍니다. 회사의 선후배들도, 다른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이고요.
첫잔을 들지않기로 한 그날 카카오톡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단주연심(斷酒連心)/술을 끊고 마음을 잇는다
오늘도 편안한 마음을 잇습니다.
오늘저녁은 절친인 고등학교 친구를 만납니다.
그친구는 소주1병, 저는 물한잔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한달동안 못보았던 마음을 이어봅니다.
90일/43일의 뒤의 43일은 첫 한개비의 담배를 놓은 날입니다.
술을 끊으니 담배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행복한 월요일되십시오.
저는 오늘도 산에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