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비구비 한계령을 넘는 버스 속에서 본 바다는 경이로웠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보았지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으니 이 서울촌놈에게 얼마나 신기했을까요?
끝없이 펼쳐지는 파랑과 하얀색, 시원한 파도소리, 세찬 바람 그리고 짠내
바다는 신기였고 환상이었습니다.
대학신입생들에게 겨울바다는 새롭게 펼쳐진 대학생활처럼 광대했고 그래서 선배들이 이곳 바다로 OT를 잡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처음 본 바다만큼이나 아직도 입안에 맴도는 말이 있습니다.
"엠병할 놈의 하일라비치 콘도미니엄, 빨리빨리 방을 줘라!"
89학번 사범대학생회장 형의 구호입니다.
돌이켜보면 말도 안되는 억지지요. 당시를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콘도는 총학생회와 단체로 계약을 했을 것이고 각 단과대별로 단과대는 과별로 방배정을 해 주었을 겁니다. 갑자기 인원이 밀려드니 객실로의 이동이 수월치 않았을 테고요. 학생회도 안전을 고려해 이미 배정되어 있는 방으로의 이동을 천천히 했을 겁니다. 그걸 콘도도 학생회도 모를리없죠.
기다려야하는 시간들이 길어졌습니다.
그 찰나를 놓칠 사범대 형들이 아니었죠. 사범대학생회장은 신입생, 재학생들을 콘도로비에 앉혀놓고 마이크를 잡고 일장 연설을 합니다. 비장하게 하는 연설이 엄청 웃겼습니다. 아침부터 고생고생을 하며 여기에 온 이야기, 빨리 방에 들어가야 하는 당위성, 배고파 빨리 밥을 먹어야 한다는 투정, 억지에 억지. 지금쯤 어느 중학교에서 역사교사가 되셨다면 수업시간에 조는 애들 하나도 없을겁니다. 그냥 사람이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으니까요. 비장한(?) 연설에 폭소가 빵빵터지고 우리들의 단결된 힘을 보여줘야한다면 구호를 외칩니다. 방 빨리 안준다고 멋도 모르는 새내기들을 휘어잡는거죠.ㅋㅋ
"동국대학교 새내기 무시하는 하일라비치 콘도미니엄, 각성하라"
"엠병할 놈의 하일라비치 콘도미니엄, 빨리빨리 방을 줘라!"
말도 안되는 구호에 신입생들, 재학생 형누나들도 웃음이 터집니다. 아마도 형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후배들에게 미안해서 그랬을 겁니다. 그래도 시간이 덜 되었는 지 각 과의 학생회장, 부학생회장들을 연단에 불러놓고 인사를 시키고 춤추게 하고 더 강하고 웃긴 구호를 외치게 했었죠.
형이 세뇌시켜준 덕에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콘도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설은 너무 좋았었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지금도 동해쪽 출장을 갈 땐 하일라비치가 생각납니다.지금은다른이름으로 바뀌어있습니다.
어제 아침에 과 동기 지민쌤에게 카톡을 하니 그 친구도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1993.02.17. 동국대 국어교육과 93새내기들
바다와 대학동기들을 같은 날 처음 보았습니다.
삼수를 하고 온 형, 상고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국어선생님이 되려고 한 상필이형, 여수에서 올라온 지지배, 마산에서 올라온 가시나, 부산마산 촌놈, 서산에서 올라온 친구, 광주에서 올라온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의 이름과 똑같은 후남이, 이름이 같은 아이 둘, 공군사관학교에 떨어져 우리과에 온 진이 등등 모두 바다속 진주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 본 바다에서 진주들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들과 함께 한 1993년은 행복했습니다. 집에는 불효자였었지만요.
사랑을 배우고 사람을 배웠던 시절이었네요. 대학은 대학이었습니다. 교과서에는 없는 사람들의 온기와 애정이, 연대와 실천이 함께 커가는 곳이었습니다. 그 가르침과 깨달음은 대학강단에서 배운게 아니었습니다. AI가 자가학습을 하듯 우리들은 서로에게서 배우고 서로를 가르치고 함께했었으니까요
지금은 전국 곳곳으로 흩어져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을 겁니다. 제주도로 내려가 세아이를 키우며 공부방을 하는 친구도 있네요. 공군사관학교에는 떨어진 친구는 졸업후 비행기를 몰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저는 엉뚱하게 <감정평가사>라는 직업을 하고 있고요.
지하철에서 광석이형의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듣습니다. 다들 선생님이 되어 있을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19살에 만나 30여년이 지났으니 많이 달라졌을겁니다. SNS로 연결되어 있는 친구들은 가끔 담벼락에다 흔적을 담기고 있습니다.
시집을 낸 상만이는 어찌 지내는지, 휴가때 우리집에 와 밥먹으며 엄마에게 너스레를 떨었던 용석이는 잘 지내겠죠. 비슷한 시기에 아이들을 낳았는지 동국대앞 제일병원에서 스치며 지나간 종연이는 잘지낼까?,제주도에서 세아이 키우는 지형이, 태훈이형, 상필이형, 승진이,진이,민영이,지영이,선희,후남이...
광석이형 노래는 바다와 친구와 그 시절을 생각나게납니다.
그 추억이 미소지으며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됩니다.
감사하죠.
오늘오후엔 전화번호가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해봐야겠습니다. 잘지내냐? 그냥 전화해봤다라고 할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