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비애

왜 미안하다고 해야하는지.

by 작가님


내가 이 많은 걸 다 해야 한다고?


신입사원 시절 회사의 인적 구조는 역피라미드 모양이었다. 내일모레 퇴직하는 직원 비율이 10이라면 2-30대 비율은 1인 상황이었다. 부서에서 실질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부장과 신입인 나 둘 뿐이었고 다른 부서도 매한가지였다. 아직도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첫 일주일을 기억한다. 쉴 세없이 몰아치는 업무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고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와서 쓰러져 자는 '지독한 5일'이었다. 밤이 있다는 것이, 주말이 있다는 것이 눈물 나게 감사하고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을 만든 신의 섭리가 사무치게 느껴졌다. 물론 회사에 입사하고 싶었고 뽑아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말한 것은 나였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막내의 자리가 고달팠다. 다행히 옆에서 도와주는 선배들이 있었고 함께 술 마실 동기들이 있어 그 시절을 그냥저냥 넘겼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결단코 사양하고 싶다.




왜 매번 미안하다고 해야 하지?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이름, 워킹맘이다. 바쁜 아침 아이를 챙기고 급하게 집을 나선다. 아이가 운다 엄마 가지 말라고, 조금만 더 같이 있자고.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동안 쌓인 내공으로 마음을 부여잡고 웃으며 '다녀올게, 이따가 재밌게 놀자' 한다. 그러나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고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든다. 헐레벌떡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하는데 어린이집에서 학교에서 자꾸 연락이 온다. '애가 열이 난다. 운동장에서 놀다가 다쳤다' 남편에게 말했지만 결국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사람은 나다. 동료에게, 관리자에게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한다. '저 집에 일이 있어 들어가 봐야 해요.' 마음씨 좋은 부장이 괜찮다고 들어가 보라고 하는데 팀장은 낮지만 뼈 있는 목소리로 '회사 일 지장 없게 하세요'라고 한다. '업무 밀린 적 없는데요, 집에 가서 애들 재우고 밤새워서라도 맡은 건 다하는데요'라는 말이 목구멍 앞까지 나왔다가 '네'라고 바뀐다. 내게 주어진 연차를 쓰는데 왜 이다지도 미안한 걸까? 집에 와서 아픈 아이를 보자 마음이 찢어진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내 인생을 바친 직장인데 말야.



아빠의 노래방 18번은 가수 현철의 '청춘을 돌려다오'였다. 왜 그렇게 그 노래를 좋아하는지 목놓아 불렀는지 그 당시 어린 나는 아빠의 모습이 이해가 잘 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철 모르던 20대, 열정을 태우던 30대, 야근을 벗 삼은 40대, 대차게 차인 50대, 아빠는 회사에 청춘을 다 바쳤다. 그리고 예전에 함께 일하던 부장님이 생각난다. 선한 인상에 모든지 허허 웃으며 좋게 좋게 넘기시던 분이었는데 암이 걸렸다고 해서 충격에 휩싸였었다. 부장님 말씀이 '회사가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한 결과가 지금이다'라고 하면서 '나 하고픈대로 하고 살걸'이라고 하셨다. 내 하루의 대부분을 아니 내 인생의 대부분을 직장에 쏟고 있는데 왜 이렇게 매몰찬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걸까?





이런 걸 직장인의 비애라고 하는 가보다. 직장 안에 내 자리가 있고 내가 할 역할이 있는 게 소중하게 느껴지고 직장 간판이 내 명함이 되어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했는데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힘들 때 도와준 사람을 못 잊고, 내가 어려울 때 매몰찬 사람은 용서 안 한다고 하는데 직장은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서운한 게 쌓이다 보면 헤어지게 된다는데 이제 직장과 이별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인가? 직장을 위해 일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결심한다. 나의 커리어를 위해 일하겠다고. 가성비 있게 직장을 취사선택하겠다고. 이판사판이다. 잊지 말자. 우리는 계약관계라는 것을. 잡은 물고기에 먹이 안 준다고 하지 않는가? 언제라도 떠날 수 있을 것처럼 지내자. 최후의 웃는 자가 승리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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