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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혁 Sep 30. 2023

책상 이야기

내가 코흘리기 시절에는 학교 책상이 그리 깔끔하지 않았다. 꼭 한두군데는 여드름 흉터처럼 패여있었다. 책상 자체가 오래된 탓도 있고, 그간의 사용자들이 장난하기 즐기는 나이다보니 그랬다. 칼이나 송곳 같은 걸로 파낸 흔적이 많았다. 심하면 구멍이 뚫려서 아래 책을 담는 공간까지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점에 불평하지 않았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관대한 마음으로 사용했다. 학교의 비품이란 게 손쉽게 휙휙 교체되던 시절이 아니었다.


아무튼 나는 책상의 흉터가 무척 거슬렸다. 신경쓰이는 친구처럼 계속 눈길이 갔다. 손톱만한 구멍을 손끝으로 만지면 꺼끌꺼끌했고, 어딘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가만 두지 못하겠어서 결국 보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하교길에 쿨피스 아이스크림 하나도 마음대로 못사던 내가 어떻게 나무 책상을 보수한단 말인가? 나는 고민 끝에 학교 앞 문방구에서 지우개를 몇 개 샀다(물론 한 번에 사진 못하고 여러 번에 걸쳐서).


하도 오래되어서 지금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 지우개는 지우개 똥을 뭉쳐서 고무 찰흙처럼 만들 수 있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장난감 슬라임과 비슷한 느낌이다. 지우개를 바닥에 세게 문댄다. 세게 문대는 것이 어찌보면 핵심인데, 마찰열이 있어야만 부드럽게 뭉쳐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우개 똥을 많이 모아서 마치 밀가루 반죽을 하듯 누르고, 비비고, 펼쳤다가 다시 뭉치길 반복하다보면, 점성이 있는 지우개 똥이 되는 것이다. 그걸로 무언가 만들고 파괴하고, 다시 만들면서 즐겁게 놀았었다.


그걸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지우개 똥은 아니고, 고무 찰흙도 아니고, 지우개 똥으로 만든 점성이 있는 일종의 찰흙이라고 말하는 것도 너무 길어서 피곤하니까, 편의상 짧게 마음이라고 부르겠다. 나는 마음을 가지고 자주 놀았다. 기본적인 형태의 사람(막대기 인간 같은 형태인데, 졸라맨이라고 아시는지?)을 만들어서 역할 놀이를 했다. 주로 전쟁과 전투를 상상하는 용도였다. 마음으로 만든 인간의 팔다리를 커터칼로 자르기도 했는데, 실제 인간이 아니다보니 당연히 죄책감은 없었다. 펑펑 슉슉 으악 하면서 손쉽게 그랬다. 어린아이 특유의 순수한 잔인성이랄까.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으스스하지만.


아무튼 나는 마음을 크게 뭉쳐서 책상의 흉터를 메꿔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 필요해서 며칠은 걸렸던 것 같다. 그 사이 만들어놓은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버릴까봐 틈만 나면 온기로 녹이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만져줬다. 쓸데없는 짓 같은데 어쨌든 그때의 나는 진심이었다. 그렇게 메추리알 만한 크기의 마음을 만들었다. 곧바로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패인 구멍을 마음으로 꼼꼼하게 채웠다. 처음에는 아주 잘 보수된 것처럼 보였다. 구멍이 사라져 평평하고, 안쪽도 보이지 않았다. 그간의 고생이 떠올라 뿌듯했다. 하지만 마음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내 딴에는 그 모양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서, 일종의 콘크리트처럼 작용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조금 흐르니 바닥에 툭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어디든 잘 달라붙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물론 처음에는 감쪽같이 붙는다. 마치 처음부터 책상의 일부였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굳어버리고, 식은 순간에는 가차없이 떨어져 나간다. 나는 이후로도 몇 번이나 마음을 만들어 구멍을 메꿔보려 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다. 어쩌면 구멍이라는 건 영원히 채워지지 못하는 걸까, 하는 예감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은 꽤 쓸쓸하다.


그때의 경험은 조금 과장하면 내 인생 최초의 실패였다. 나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엉엉 울거나 우울증에 빠지진 않았다. 다음날이 되자 구멍이니 마음이니, 감쪽같이 잊고 친구들과 희희낙락거리며 뛰어놀았다. 나는 어렸다. 아직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아직 오지도 않은 청춘과, 가능성으로 가득한 미래들이... 그래서 사소한 실패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은 나이였다.


물론 지금의 내게도 아직 꽤 많은 시간과 가능성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면 어딘가 먼 이국 땅에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이는 그릇에 불과하고, 거기에 무엇을 담는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예전보다 색이 바래고, 이가 조금 빠진 그릇을 보면 쓸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책상 이야기였는데,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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