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3일
나는 언제나 깊은 대답을 원한다. 그래서 종종 뜬금없는 타이밍에 이상한 질문을 한다.
어렸을 때는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주 가까운 사람과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니까. 우린 그정도로 친하지 않은데? 당연히 부담스럽다. 그땐 사람 사이의 간격 같은 걸 전혀 몰랐다. 감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받아주는 사람이 늘었다. 나도 얼마간 요령이 생겼다. 적당한 타이밍에, 부담스럽지 않게 순화해서 물어본다. 다수보다 일대일 대화를 더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러사람 앞에서 하기 힘든 이야기도 둘이 있을 땐 할만하다. 그때 질문하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는 항상 깊은 대답을 원한다. 휘뚜루마뚜루 겉도는 대화는 생략하고 곧바로 본질로 가고 싶다.
적당히 대답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어렵다. 아니, 어렵진 않다. 단순한 농담이나 우스갯소리도 좋아하니까(실은 엄청 좋아한다). 하지만 깊은 대답을 해주지 않는 사람과는 애초에 스몰토크도 하기가 싫다. 몇마디 나눠보면 이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얘기해줄 사람인지 감이 온다. 자기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는 사람과 대화하면 몹시 피곤하다. 정말이다. 피곤하다.
그나저나 왜 그런 걸 물어볼까? 타인에게 관심이 많으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나는 항상 내가 궁금하다. 나를 더 알고 싶다. 타인에게 하는 모든 질문은 결국 나를 향한다. 나는 질문을 통해 상대의 좌표를 파악하고, 거기에서부터 나와의 거리를 통해, 혹은 그 낙차를 통해 나자신을 알아낸다. 내 위치를 찾는다. 그런 방식으로 세상과 나를 이해하려는 모양이다. 그래서 자꾸 질문하고, 더 깊은 대답을 바라는 것 같다. 그동안 살면서 꽤 오래했는데도, 아직 나는 모르는 게 많다. 한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