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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병운 May 15. 2019

정세랑 [피프티 피플]

여기 50(+1) 명 있다.

영상 매체가 병원이라는 공간을 선호하는 이유를 알 듯하다. 병원은 전형적인 병과 죽음, 극복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에 가장 그럴싸한 휴먼스토리의 공간이다. 게다가 연애라는 이름의 이성애 기반 유교 가족 휴먼 스토리를 넣기에 가장 무난한 그릇이 놓인 곳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일까. 근간에는 정치 드라마 뺨치는 욕망과 가투가 서린 서사를 비벼 넣는 것도 가능하고, 그 자체가 한국 사회의 미니어처 화조차 가능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덕이기도 때문이다. 사적 기업화와 자본의 욕망이 언제나 비집고 들어가 인술이냐 기술이냐의 대립각이 잘 서는 갈등의 장이 되기도 한다.


정세랑 작가는 이 한정된 공간, 어쩌면 드넓게 확장할 수도 있을지 모를 이 공간의 주변부 곳곳에 50명을 제각각 배치한다.(한 독자는 정확히 51명이라고 한다) 잘 읽히고 재미난 책이다. 굳이 말하자면 내겐 그의 전작 중 [보건교사 안은영] 보다 [재인, 재욱, 재훈] 계열로 읽혔다. 그렇다. 덜 미숙해도 언제나 좋은 마음을 품은 상태로 세상을 견대내고픈, 이런 바른 마음을 먹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세상에 한 톨씩 기여를 하는 그런 이야기다. 그리고 그 기여가 권말에 정말 서로들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어떤 수난을 이겨내는 원동력을 보여준다.


아 그래도 이 책 안에서 악역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악의 사고를 저지른 어떤 가해자가 한 명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훈육과 습속의 관성으로 후배의 고막을 나가게 만든 중년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다. 도태되어 곰팡이 나는 빵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선의가 있다. 이들의 선의는 기계적이고 교조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의 풍경을 그들 자신도 알게 모르게 올곧게 유지하는 작은 보탬이 된다. 나이를 먹은 이는 현명함을 발휘하고, 어린 이들은 세상의 선의를 순진하게 믿으며 버텨주고, 젊은 이들은 한계 속에서도 재기 있게 지혜를 발휘한다.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에선 그 기여의 결과를 보여준다. 그래도 세상은 강인하게 버티고 끝끝내 변하지 않을 둔함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사람들을 넉넉하고 넓게 둘러본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씩씩함을 유지하는 여성들이 있고, 장애, 다양한 성적 지향, 대안적 가정 형성의 가능성, 서울과 경기도권을 중심으로 확장하는 다인종 사회구조의 변화, 무엇보다 중요한 한 사회 안에서 시민으로서 덕목과 교양을 지키는 것에 대한 중요함들의 상기시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 아연 질색할 파장을 남기는 끊어지지 않는 참사와 재난, 그리하여 남은 생존자들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사회를 보는 근심과 더불어 그래도 상실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촉구가 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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