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1
3시 반 퇴근 그리고 8시 반 출근. 이 근무 시간만 보는 사람들은 팔자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육아 친화적인 환경이며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첫째로 시간은 줄었지만 일은 그대로다. 내가 하는 일은 매일의 할당량이 있는 게 아니라 몇 개월, 몇 년 단위의 프로젝트로 움직인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일이 없을 땐 여유롭지만 바쁠 땐 휘몰아치는 업무에 정신이 없다. 한가할 땐 상관없지만 업무가 가중될 때는 퇴근 시간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다. 출장을 나가야 하는 일도 많아 오후 출장이 잡히면 3시 반 퇴근은 어불성설이다. 그땐 그냥 마음을 비운다. 장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일하는 수밖에 없다.
출장 시간을 조정하거나 나는 3시 반 퇴근이니 업무조정을 해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고 나 역시 염치가 없다. 그냥 별 말없이 일한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역시 업무가 바쁜 날이었다. 간신히 3시 반을 살짝 넘긴 시간에 퇴근을 하고 서둘러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4시 반이 넘어가면 연장반으로 가는데 이때 하원하는 첫째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묻어있다. 연장반에 가기 싫다고 운 것이다. 첫째를 울리지 않으려면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다행히 제시간에 왔다. 첫째를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첫째가 음료수를 사달라고 한다. 첫째는 뽀로로 보리차, 나는 제로콜라를 들고 근처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첫째에게 하소연했다.
"첫째야 회사 다니는 게 힘들다. 첫째는 어린이집 안 힘들어?"
"힘들어."
푸핫!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물어봤다.
"첫째는 어린이집이 뭐가 힘들어?"
"피곤해."
벤치에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한참 크게 웃다가 첫째를 위로해 줬다. 그렇지 첫째도 힘들지.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힘든 점이 있는 법인데 첫째는 그냥 어린이집에 놀러 다닌다고 생각해 버렸다. 실수다. 어린이집도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는 사회생활일 텐데. 집에서보단 확실히 덜 자유로울 것이고 말이다.
앞으로 첫째한테 하소연하지 말아야겠다. 첫째도 힘든 일이 있을 수 있고 믿고 있는 부모의 부정적 이야기가 첫째에게 불안감을 줄 수도 있고 하니까. 그래도 오늘은 말하길 잘한 것 같다. 첫째의 힘듦을 들었으니.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띵한 느낌을 받은 하루다.
#2
둘째가 드디어 뒤집었다. 근 일주일 넘게 거의 넘어갈락 말락 하는 상태였는데 마지막으로 걸리던 한쪽 팔을 힘차게 넘겨버렸다. 첫째 때는 회사에 있어 역사적인 현장을 보지 못했는데 둘째는 휴일에 뒤집기를 성공해 온 가족이 생생한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내도 나도 그리고 둘째도 모두 박수를 쳤다. 뒤집기가 되지 않아 답답해 울던 둘째는 성공하고 나자 방긋 웃는다. 그리고 다시 시도한다.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두 번째부턴 쉽게 넘어간다.
첫째보다 한 달 정도 뒤집기 늦었긴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다. 지금의 첫째는 활발하고 말도 빠른 편이다. 둘째 역시 자기만의 순서가 있겠지. 그냥 허벅지랑 팔이 통통해서 늦은 것이라 생각하려 한다.
한 달 뒤면 이제 이유식을 시작한다. 앙상한 허벅지를 가지고 집에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유식이라니. 시간이 빠르다 싶다.
#3
첫째가 요즘 혼자 노는 시간이 길어졌다. 육아 발달사항 중 혼자 노는 시간을 측정하는 항목이 있는데도 항상 아내나 나와 함께 놀려고 해서 걱정이었다. 이제 그런 걱정을 덜어도 될 것 같다. 혼자서 쌓은 블록을 가져와 자랑하는 첫째를 보고 있으면 참 뿌듯하고도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