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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un 16. 2024

아픈 줄 몰랐어 _ (D + 792일, D + 167일

육아일기



#1


 여느 날처럼 첫째를 하원시키러 가는 길, 어린이집 인터폰으로 호출을 하고 첫째가 나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밝은 얼굴로 선생님과 나오는 첫째. 반가운 마음에 꼭 껴안았는데 어디가 불편한 듯 팔을 뺀다.


 "아버님, 오늘 첫째가 낮잠을 못 잤어요. 피곤해할 것 같아요."


 졸려서 그런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인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손을 잡고 집에 가려는데 팔을 뒤로 뺀다. 왼쪽 손을 만지지 못하게 하더니 조금 걷다 칭얼거린다.


 "안아줘"


 평소 같으면 근처 상가로 뽀로로 음료수를 사러 가자고 했을 텐데. 오늘은 바로 집으로 가자고 한다. 피곤해서 그런 거겠거니 하며 별생각 없이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에서 아내가 첫째를 반긴다. 밝게 인사했지만 시무룩한 첫째의 모습. 아내에게 오늘 첫째가 낮잠을 못 자서 그렇다고 이야기하며 가방을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둘째를 목욕시키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첫째가 팔이 아프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거짓 울음도 늘고 아프지도 않은 데 징징거리는 경우가 많아 꾀병이겠거니 했다.


 "어이구 아팠어? 아빠가 호 해줄게. 호~"
 
 평소 같으면 호 해주고 나서 바로 나았다고 밝게 웃었을 텐데 표정에 변화가 없다. 시무룩한 느낌. 배가 고픈가 싶어 밥을 차려줬다. 수저를 건네주는데 굳이 멀리 있는 오른손으로 잡는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왼손에 물건을 가져다 주자 잡지 않는다. 혹시 팔이 진짜 아픈 건가? 싶어 계속 물건을 주자 왼손으로 잡는다. 하지만 곧 놔버린다. 자세히 보니 왼손이 축 쳐져있다. 손가락은 움직이는데 팔꿈치는 가만히 있다. 아내가 핸드폰으로 팔이 빠졌을 때 어떤지 검색을 해본다. 


 팔이 빠졌다기엔 뭔가 애매한 느낌이었다. 팔이 빠진 아이들은 울기 마련이었고 손을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한다고 되어있었다. 긴가민가한 느낌이 계속되다가 밥을 거의 먹지 않는 모습에 결국 아내가 첫째와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아내가 말한다.
 "꾀병인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이 아픈 게 아니라고 하면 낫지 않을까?"
 "의사 선생님이 확인해 주면 맘이라도 편할 테니, 꾀병이라도 갔다 오는 게 낫지 뭐."


 둘째를 안으며 별일 아니겠거니 생각했다. 좀 칭얼거리긴 했어도 별로 아파 보이진 않았으니 말이다. 얼마뒤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의사 선생님이 진찰하고 밖에서 대기하는데 팔도 잘 움직이고 엄청 활발하게 잘 놀아. 꾀병이었나 봐. 이제 x-ray만 확인하고 집에 가려고."


 역시 꾀병이 맞았다. 두 돌 지난 아이가 꾀병이라니. 뭔가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 진료를 받자마자 활발히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오면 꼭 안아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쑥쑥이랑 열심히 놀아줬다.


 얼마 뒤 다시 문자를 확인했는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은 느낌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진찰 시 별 말이 없었는데 사실 팔을 살피며 짧은 순간에 팔을 끼운 것이었고 x-ray로 괜찮은지 확인한 거라고 말이다. 


 미안한 마음에 가슴에 뿌연 안개가 낀 것 같았다. 그냥 컨디션이 안 좋겠거니, 꾀병을 부린 것이겠거니 넘겨짚은 내가 미웠다. 분명 아팠을 테고 팔이 잘 안 움직였을 텐데 표현을 잘하지 못해 그냥 가만히 있었을 첫째가 안쓰러웠다. 부모가 더 세심히 살폈어야 하는데. 너무 무심했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어린이집 선생님과 통화했다며 정리정돈 시간에 선생님과 손을 잡고 다니다 팔이 빠진 것 같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도 앞으로 더 잘 살피겠다고 말이다. 첫째는 언제 아팠냐는 듯 집안을 활발히 돌아다닌다. 아프지 않으면 팔을 저렇게 휘젓고 다니는데 몰라본 내가 한심하다.


 이 세상에 첫째와 둘째를 세심히 지켜줄 사람은 나와 아내밖에 없다. 잘해준다고 해도 결국 남일 뿐이고 나와 아내가 알아봐 주지 못한다면 첫째와 둘째의 사정은 외로움 속에 묻혀버릴 것이다. 더 잘해야지. 먹먹한 자책감이 드는 하루다.


#2


 둘째와 놀아주는 게 지친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말도 걸어주고 재밌는 표정도 지어주지만 계속 반복하려니 힘들다. 꺄르륵 웃는 소리에 힘을 내보지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할 수 없다. 그나마 튤립사운드북에 나오는 동요를 계속 따라 부르면 지루함이 덜하다. 이렇게 동요를 외우는구나 싶다.


#3


 머리를 깎고 나서 하원한 첫째와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첫째가 
 "아빠 머리 잘랐어?"
 라고 물어본다. 깜짝 놀란 아내와 내 눈이 동그레 진다. 방금 머리 잘랐냐고 물어본 게 맞냐며 아내와 내가 발을 동동거리며 좋아한다. 두 돌이 갓 지난 지금 말을 잘 못하는 아이도 많은데 짧아진 아빠의 머리를 캐치해서 머리 잘랐냐고 물어보다니. 내 딸이지만 참 똘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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