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오늘은 첫째와 본가에 가서 하루 자기로 한 날이다. 며칠 전 어머니께 연락을 하다 첫째와 내가 하루 자고 가는 이야기가 나와서 약속을 잡았는데, 막상 약속일이 되기 긴장되기 시작했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아내가 조리원에 가있는 동안 나와 첫째 둘이서 지내긴 했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때보다 첫째의 엄마의존도도 많이 높아져 있었다. 요즘은 내가 첫째의 옷을 입히고, 씻기고, 기저귀를 가는 게 거의 불가능해진 상태이다. 그런데 아내와 둘째를 집에 두고 나와 첫째와 하루를 보내야 한다니.
그래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오롯이 하루의 시간을 같이 보내면 첫째와 나의 관계가 좀 더 돈독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이참에 엄마 의존도를 줄일 수도 있고 말이다.
퇴근하자마자 첫째를 서둘러 하원시키고 본가로 향했다. 첫째는 할머니집에 가서 하루 잔다고 하니 곧 잘 따라나선다. 차를 탈 때 엄마가 보고 싶다고 조금 칭얼거리긴 했지만 뽀로로 노래를 틀어주니 따라 부르며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무사히 본가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소고기를 준비해 두셨다. 고기를 구워서 첫째에게 주니 "정말 맛있어!"라고 소리치며 잘 먹는다.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할머니와 산책도 다녀오고 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했다. 어느새 9시 반 이제 잘 시간이 되었다.
첫째는 평소에 8시 반에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본가에선 9시 반까지 신나게 놀아줬다. 낯선 환경이니 피곤해야 잘 잘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익숙한 곳에서 잘 수 있도록 어린이집 낮잠이불을 바닥에 깔고 첫째를 눕혔다. 꼼지락거리며 잘 듯하다가 갑자기 외친다.
"엄마 보고 싶어."
칭얼거리며 우는 첫째를 보니 당황스럽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상황이 되니 어떻게 달래야 할지 막막하다. 엄마는 내일 집에 가서 볼 거라고 오늘은 아빠랑 자는 거라고 말하며 주의를 환기시켜 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이대로 집에 가야 하나 싶은 순간 어머니가 와서 첫째에게 부채를 부쳐준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한결 기분이 좋아진 첫째. 하지만 그래도 계속 칭얼거린다. 엄마, 엄마를 계속 찾는다. 달래는 게 점점 지쳐갈 즘 갑자기 첫째가 베개에 코를 박고 눕는다. 속으로 나이스를 외치고 살살 토닥인다. 그렇게 나도 같이 잠들었다.
다음날 7시. 첫째가 나를 깨운다.
"아빠~ 일어나!"
첫째가 옆에 있어 잠을 좀 설친 탓인지 피곤하다. 뭉그적 대며 일어나야지 하는 순간 어머니가 첫째를 데리고 나갔다.
"할머니랑 놀자~."
그렇게 한 잠 더 자니 9시. 일어나 보니 첫째는 아침도 먹고 간식도 먹은 상태였다. 역시 어머니랑 있으면 편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랑 있었다면 이렇게 더 자는 게 눈치 보였을 텐데 말이다.
어머니가 점심에 결혼식을 가야 한다고 해서 서둘러 본가를 나섰다. 엄마 없이 아빠랑도 같이 잘 잔 첫째가 대견스러웠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첫째를 격하게 반긴다. 첫째가 잘 있었냐는 아내의 물음에 자기 전에 좀 보채긴 했지만 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아내는 첫째가 엄마 없이도 하루를 잘 보냈다는 사실에 좋으면서도 아쉬워하는 듯했다. 엄마 없이도 시간을 잘 보내는 첫째가 대견하지만 잠이 들 때 안 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생각했던 엄마가 아빠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좀 허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평소처럼 아내와 나, 첫째, 둘째가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코코가 내게 응가를 닦아달라고 한다. 평소에는 내가 닦아주려 해도 한사코 엄마만 찾았던 첫째였다. 하루 찐하게 시간을 같이 보내니 내게 더 의지하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내도 이건 인정이라며 날 추켜세운다.
더 돈독한 첫째와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둘이서 보내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