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퇴근 전 차장님께 전화를 받았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팀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를 내게 맡기는 차장님의 지시에 화가 났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침착하게 생각해 보겠다고 이야기한 뒤 내일 연차휴가 좀 쓰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퇴근하며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올해 초 비슷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었다. 차장님은 해봤던 프로젝트니 내가 잘할 것이라는 요지로 말했다. 자기만 편하게 일하고 싶은 속셈이었다. 일이 좀 꼬이긴 했지만 차장님과 2년 차 직원이 같이 해나가면 큰 문제가 없는 프로젝트였다. 거기에 나까지 끼워 넣는 건 프로젝트에 대한 머리 아픈 고민을 하기 싫다는 의미로 읽혔다. 거기다 나는 곧 육아휴직을 쓸 예정이라 1년이 넘는 프로젝트를 다 끝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머리가 지끈 아팠다. 솔직히 하면 할 수 있다. 다만 부서에서 내 업무가 과중된다. 2시간의 육아 단축근무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현안사항인 만큼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생길 텐데 그러면 제때 퇴근하지 못하고 야근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휴가를 썼다고 이야기하려다가 말았다. 미안하긴 하지만 내일은 회사도 가기 싫고 육아도 하기 싫었다. 그냥 그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 싶었다. 영화를 검색해보기도 하고 드라이브 코스를 검색해 보기도 하다가 뭘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평소에 출근하듯 집을 나섰다. 무엇을 할까 하다가 순대국밥을 먹으러 갔다. 순대국밥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나는 나의 쏘울푸드다. 따끈한 국물을 먹으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뭘 할까 하다가 결국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하루종일 노트북으로 재테크 공부를 하고 점심은 친구와 함께 먹었다. 무언가에 집중해 있었는데도 툭. 툭. 어제의 업무분장 건이 생각났다.
결국 업무를 맡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머지 업무는 하지 않고 그 업무만 하겠다고 말할까 고민했지만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 1개만 업무를 조정해 달라고 말할 생각이다. 이것도 안 해주면 그땐 전쟁이다.
첫째를 하원시킨 후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평소처럼 맞아준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휴가를 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내는 집에서 둘째를 돌봤을 테니 말이다. 솔직히 얘기할까 하다가 괜한 분란을 만들까 싶어 비밀로 하기로 했다.
육아를 시작하고 나니 휴가도 맘대로 쓰지 못한다. 여름과 겨울에 어린이집이 휴원하는 총 10일 동안 사용할 휴가를 남겨놔야 하니 빠듯하다. 더군다나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휴가를 써야 해서 내 개인적 일로 휴가를 쓰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 됐다. 집안 일로 휴가를 쓰면 아내는 내게 휴가가 며칠 정도 남았는지 확인한다. 지나친 간섭이라 느껴지지만 아내 입장도 이해가 된다. 작은 일에 휴가를 써버리면 정작 급할 때 쓰기 부담스러워지니 최대한 아껴서 사용하라는 마음 말이다.
다음에 아내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남은 일수를 정확하게 이야기해야겠지? 혹시 저번에 며칠 남았는지 기억하면 어떡하지? 아, 고민하기 싫다. 그냥 납작 엎드리면 되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