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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un 21. 2024

훈육을 했다 _ (D + 835일, D + 210일)

육아일기



 처음으로 첫째와 둘째에게 바다를 보여준 여행이 끝났다. 힘들긴 했지만 처갓집 식구들과의 여행에서 잘 놀고 잘 자서 다행이었다.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라고 물었을 때 바다라고 말한 첫째의 대답은 여행의 피로를 가시게 해 주었다.


 여행의 마무리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낮잠을 잔 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던 첫째가 고집을 피운다. 집에 가지 않겠다고, 더 놀 거라고 버티며 온 가족이 움직이질 못하게 한다. 설득도 해보고 엄하게 얘기도 해봤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다. 아내와 모종의 눈빛을 주고받고 첫째를 그냥 들어 올렸다. 


 맹렬히 울기 시작하는 첫째.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된다. 등뒤에 꽂히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바둥거리는 첫째를 안고 차로 향한다. 억지로 카시트에 앉혀보지만 몸부림을 치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한쪽 신발이 벗겨진 채로 온몸으로 울기 시작한다. 흙바닥을 뒹굴면서.


 처형네 가족과는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했고 장인어른 장모님께는 짧게 인사를 드렸다. 어쩔 줄 몰라하시는 장모님께 저희가 알아서 챙겨 갈 테니 먼저 가시라고 말씀드렸다. 첫째는 더 놀 거라고, 엄마를 찾아오라며 계속 울었다. 아내는 둘째를 반대편 카시트에 태우고 나서 나랑 대치중인 첫째에게 다가가 몇 마디 속삭이더니 첫째를 번쩍 안아 올린다. 그리고 카페 주위를 돌며 첫째를 진정시킨다. 


 그사이 둘째가 울기 시작한다. 카시트에 누워있는 둘째를 달래 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안아서 달래야 할 것 같은데 곧 출발할 것 같아 토닥여주기만 했다. 둘째는 끝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기분이 좀 나아진 첫째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운전하며 집에 가고 있는데 뭔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시기에 첫째가 주양육자인 엄마만 찾는 건 당연한 거겠지만 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아이와 내가 갈등이 생겼는데 항상 아내가 갈등을 푸는 사람이 되는 건 육아에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번에 이런 일이 생기면 갈등의 마무리까지 내가 책임져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대로는 엄마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질 뿐이었다.


 집 주차장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내가 코코를 데리고 올라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만약에 코코가 엄마랑 가겠다고 떼를 쓰면 아빠랑 올라가야 할 때도 있는 거라고, 이번엔 아빠랑 가야 한다고 말하겠다고 말이다. 아내는 좋지 않은 내 기분을 포착했다.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1박 2일 내내 육아에 치여 시달린 것도 피곤한데 항상 엄마만을 찾고 자기의 의견을 끝까지 울며 관철시키는 첫째에게 지쳐있었다.


 하지만 기분이 상해서 결정을 내린 건 아니었다. 그전부터 필요성을 계속 느끼고 있었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이 된 것뿐이었다. 아내는 조금 불안했는지 유튜브에서 육아 영상을 찾아본다. 엄마만 찾는 아이를 어찌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영상에서 육아 유투버가 아빠에게 훈육의 상황이 생기면 엄마가 간섭하지 말고 갈등의 끝까지 아빠에게 맡기란 이야기가 나온다. 아내는 내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자기는 둘째를 데리고 먼저 올라가겠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고 주차를 한 후 첫째에게 물어봤다.
 "첫째야 둘째는 엄마랑 집에 올라갈 거고 첫째는 아빠랑 집에 올라가면 돼."
 내 말이 끝나자마자 첫째는 엄마랑 올라갈 거라며 울기 시작한다. 
 "엄마랑 올라갈 수도 있지만 이번엔 아빠랑 올라가야 해."
 나는 뒷좌석 문을 열고 서있고 첫째는 카시트에 앉아서 대치하는 상황. 서로 물러서지 않으니 주차장엔 첫째의 울음소리가 계속 퍼져나간다.


 10분이 지나도 상황은 변한 게 없었다. 차를 타러 내려온 주민들이 아이 울음소리에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간다. 나는 계속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첫째야 이번엔 아빠랑 집에 올라가야 해."


 30분이 지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날 쳐다보며 지나갔고 그중엔 나와 안면이 있는 분도 있었다. 내 상황설명을 듣고는 그럴 때가 있다며 첫째야 빨리 들어가~라고 이야기해 주고 가셨다. 첫째는 나와 잠시 대화했다가 엄마랑 가겠다고 떼를 썼다가 다시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첫째야 이번엔 아빠랑 집에 올라가야 해."


 지쳐갈 즈음. 내 핸드폰으로 뽀로로 파크에서 놀았던 영상을 보여달라고 한다. 영상을 보여주면 아빠랑 집에 올라가겠다고 말이다. 드디어 끝났구나. 영상을 보여주면 아빠랑 집에 올라가는 거라는 약속을 한 번 더 한 후 재생버튼을 눌렀다. 코코는 짧은 영상을 보더니 고분고분하게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힘든 상황을 이겨냈다는 느낌과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 섞여 묘한 기분이 되었다. 무섭게 얘기하지도 감정을 섞어서 이야기하지도 않았지만 아이에 행동에 물리적 제약을 가한 건 맞았다. 결국 첫째가 고집을 꺾고 평화적으로 해결되었지만 세 돌도 안된 아이를 훈육을 목적으로 이렇게 이겨먹는 게 맞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지만 훈육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일 뿐 내가 처한 상황에 딱 들어맞는 해법은 찾기 어려웠다. 다만 훈육할 땐 사무적인 태도로, 단호하게 하지만 감정을 내세우진 않고 잘못한 것만 담백하게.


 말은 쉽다. 행동은 어렵다. 그리고 직접 하는 훈육은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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