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오늘은 첫째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날이다. 보통 첫째가 걱정된 아내가 병원을 데려가곤 했다. 하지만 아내가 첫째를 하원시키는 일이 잦아지니 내가 어린이집에 가면 엄마를 데려오라고 떼를 쓰는 통에 웬만하면 내가 하원을 시키고 병원에 데리고 가는 걸로 아내와 정리를 했다.
퇴근 후 옷을 갈아입고 휴대용 유모차를 챙겨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첫째가 잘 걸어 다니긴 하지만 병원이 꽤 걸어야 하는 위치에 있기에 유모차는 필수다. 일단 태우기만 하면 쭉 밀고 어른 걸음걸이로 병원에 갈 수 있으니 시간도 에너지도 절약된다. 어린이집에 도착하고 첫째를 불렀는데 얼굴이 어둡다. 또 시작이구나. 엄마랑 하원하고 싶다며 떼를 쓰기 시작한다.
담임선생님은 여러 아이를 돌보고 있고 아이들이 하원하면 문서업무를 해야 하기에 시간을 뺏으면 안 된다. 우느라 선생님과 제대로 인사도 못했지만 얼른 들어가시라고 말씀드린 후 첫째를 달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다. 신발도 신지 않고 유모차도 타지 않는다고 버티는 상황.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복도에 지나가던 담임선생님이 이 상황을 보시고 아직도 여기 계시냐며 첫째에게 사탕을 주고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신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아내에게 떼를 쓰는 첫째에게 내가 먹을 것이나 흥미로운 걸로 시선을 분산시키면 첫째가 기분전환이 되는 순간이 말이다. 첫째는 선생님의 노련한 노하우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고 신발을 신고 유모차에 탔다. 이제 병원으로 가면 된다.
한여름. 날씨가 덥지만 서둘러 병원으로 향한다. 어린이집 하원시간엔 병원에 사람이 몰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첫째가 유모차에서 내리겠다고 하면 언제 병원에 도착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병원까지는 별 일 없이 도착했다. 하지만 역시나 대기석엔 사람이 꽉 차있다. 접수를 하니 첫째는 14번째.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에 부담이 된다. 고집 센 28개월 아이와 병원에서 대기.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조용히 지나갈 리는 없다.
의자에 앉아서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지만 곧 흥미를 잃었는지 찡찡거리기 시작한다. 아직 몇 명 빠지지도 않았는데 위기가 왔다. 결국 유모차에서 내려주고 병원을 구경시켜 줬지만 또 금세 지루해한다. 할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었다. 아직 뽀로로와 같은 유튜브 동영상은 보여주지 않았기에 사진첩에 있는 우리의 사진과 동영상도 첫째에겐 충분히 자극적이다. 바다에 놀러 갔던 사진, 집에서 생일케이크를 부는 동영상 등을 보여주며 버틴다. 그래도 여자아이라 그런지 주변 남자애들보단 얌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병원을 뛰어다니진 않으니 말이다.
첫째가 목이 마르다고 해서 종이컵에 물을 떠다 드리고, 다시 또 심심하다고 해서 상가 복도에서 산책시켜드리기를 여러 번 드디어 첫째의 차례가 왔다. 증상은 콧물, 기침이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요즘 유행하는 목감기라며 항생제와 함께 5일 치 약을 처방해 주셨다. 마무리 됐다는 홀가분한 생각에 병원에서 결제를 하는데 첫째가 비타민 캔디를 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아... 소아과에선 진료가 끝나면 뽀로로 비타민 캔디를 2개씩 줬는데 여긴 이비인후과라 그런 게 없었다. 폭주하기 시작하는 첫째를 약국에 가서 사주겠다며 달랜 뒤 유모차에 태워 엘리베이터에 탔다.
약국에 도착해 처방전을 건넨 후 선반을 둘러보는데 비타민 캔디를 낱개로는 팔지 않는다. 그나마 제일 작아 보이는 걸 골라서 계산하니 4000원. 약값이 3000원인데 작은 뽀로로 캔디가 더 비싸다. 나도 모르게 "이게 약값보다 비싸네요."라고 말하니 계산하시는 분의 반응이 그리 좋진 않다. 그냥 머리로만 생각할 걸 후회하며 약국을 나선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저녁을 먹지 못해 배도 고픈데 첫째는 유모차를 자기가 밀겠다며 떼를 부려 길거리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첫째가 한참을 밀었는데도 유모차는 몇 발자국 나가지 못했다. 방향도 계속 틀어지고 속도도 느리다. 위험하게 자전거는 또 왜 이리 지나가는지.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에게 괜한 원망을 해본다.
어르고 달래 유모차에 태운 후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더운 날씨라 티셔츠는 흠뻑 젖었지만 병원에 다녀와서인지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저녁 먹고 씻기면 곧 재울 시간이겠구나. 일이 많으면 시간이 금방 가는데. 정신없이 지나간 여러 이벤트 덕분에 오늘은 육퇴까지의 시간이 금방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