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나서는 길, 마주 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의례 그랬던 것처럼 눈을 피했다. 하지만 "안녕~ 아기네~ 너무 하얗고 예쁘다." 이 한마디에 난 무표정을 풀고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한다. 몇 개월인지, 여자 아이인지 물어보고 통통해서 나중에 키가 크겠다고 하시며 아이가 예쁘다고 칭찬해 주셨다. 마치 내가 칭찬을 들은 것 마냥 기분이 좋다.
호주에 1년 정도 머물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눈이 마주쳐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름 호주에 익숙해져서 처음엔 나도 모르게 마주치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인사했지만 상대방의 냉담한 반응에 나는 곧 무표정에 익숙해졌다. 처음엔 이 삭막함이 아쉬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편해졌다.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다 보면 이렇게 낯선 사람과 대화할 일이 많다. 물론 호의적인 분위기에서 말이다. 첫째가 귀엽다고 사람들이 말을 걸면 첫째는 쑥스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몇 살인지, 어디 가는 중인지는 옆에 있는 내가 옆에서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하게 된다.
"28개월이에요~ 아이스크림 사러 가고 있어요~"
집에서도 밖에서도 사람 냄새가 더 많이 난다. 내 개인시간이 사라졌지만 아내와 나, 딸 둘이서 복작복작 떠드는 시간이 많아졌고, 첫째가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해서 더 자주 전화하고 찾아뵌다. 장모님은 육아에 치이는 아내를 위해 아이들을 돌봐주고자 우리 집에 더 자주 찾아오신다. 거기다 모르는 사람과의 사람 냄새나는 대화까지.
마치 새로운 삶이 열린 느낌이다. 결혼도 인생의 큰 변화였지만 출산과 육아만큼은 아니었다. 대학입학, 취직, 결혼과 같은 굵직한 이벤트 중에서도 가장 큰 전환점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사람, 돈, 시간에 대한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다. 가족중심적으로 말이다.
삶이 더 만만치 않아 졌지만 사람냄새가 가득 난다. 자식을 갖지 않는 딩크의 삶도 존중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이상 아이들과 같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생도 살아볼 만하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