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정신없이 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정시 퇴근이지만 깔끔하게 풀리지 않던 일 때문에 자꾸 업무 생각이 난다. 어린이집 하원시간이 간당간당해 서둘러 주차하고는 현관문을 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둘째를 안아 들고 아내와 바통 터치를 한다. 보통 내가 첫째를 하원시키지만 오늘은 치과 영유아검진이 예약되어 있어 아내가 하원시킨 후 바로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회사에서 퇴근하자마자 바로 육아로 출근. 매일 반복되는 일이기에 익숙해졌지만 빡빡한 느낌이 든다. 둘째와 놀아주다 보니 첫째가 검진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진찰결과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불소도포를 했기에 최소 1시간이 지난 후 식사가 가능하다고 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먹었다.
첫째가 흘려 난장판이 된 식탁과 바닥을 치우고 정리를 하니 어느새 8시가 다 되어간다. 나는 둘째 담당이기에 쪽쪽이와 손수건, 분유, 쿠션을 가지고 아이들이 자는 방으로 향한다. 수유를 하고 토닥이는데 느낌이 좋다. 역시 금방 잠들었다.
근데 옆에 아내와 누워있는 첫째가 너무 쌩쌩하다. 안기기도 했다가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가 화장실에 갔다가. 쉴 새 없이 떠들며 놀기 바쁘다. 둘 다 잠들어야 이 방을 나설 텐데. 아내와 나는 첫째가 거는 말에 대답하며 잠들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9시. 9시 반. 10시.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지만 잠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물었다.
"첫째야 엄마랑 아빠 퇴근 언제 시켜줄 거야?"
"퇴근? 어디가? 어디 가는 거야?
퇴근을 알아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질문했는데 어디 놀러 가는 줄 알았나 보다. 괜한 말을 해서 진정시키느라 또 진땀을 뺐다. 늦어도 9시 반이면 아이들이 다 잠드는데 오늘은 10시 반이 되도록 별 가망이 없다.
그런데 첫째가 베개를 달라고 하더니 갑자기 잠이 들었다. 피곤했지만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제대로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내와 행복한 눈짓을 주고받고 방을 나서려는데 잘 자고 있던 둘째가 갑자기 깼다. 둘째는 잠드는데 나 하나면 충분하기에 아내에게 먼저 나가라고 한 후 둘째 옆에 누웠다. 잠이 덜 깨서 눈이 감기긴 하는데 잠든 줄 알고 나가려니 귀신같이 알아채곤 운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손이든 발이든 내 몸에 조금이라도 걸치려고 꼭 붙어있는 둘째를 보니 또 귀여운 마음이 든다.
그렇게 방을 나서려다 다시 눕고, 일어나려다 다시 재우길 여러 번 드디어 둘째도 잠들었다. 방에서 나오니 11시. 평소 같으면 힘들었던 하루에 대한 보상으로 맥주 한 캔 마시고 잤을 텐데 내 건강을 걱정하는 아내와 1주일간 맥주를 먹지 않기로 약속했기에 냉장고에 있던 떡을 좀 가져와 먹으며 이렇게 일기를 쓴다.
세 시간 가까이 누워있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내 개인의 삶은 없고 회사의 고용인과, 두 아이의 아빠로 꽉 찬 하루. 아이들을 보면 행복하지만 지치고 힘들다는 생각을 떨쳐낼 순 없다. 언제쯤 편해지려나. 언제쯤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으려나. 한 2박 3일 정도 정처 없이 여행하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럼 좀 충전이 될까. 내가 곧 방전을 앞둔 핸드폰 같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