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D + 905일, D + 280일)
오랜만에 본가 가족끼리 모였다. 동생과 내 생일에 맞춰 토요일 점심에 밥을 먹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 때문에 밖에서 먹기 힘드니 집에서 장어와 해물찜을 먹었다. 동생과 나의 생일케이크지만 첫째가 큰 소리로 생일축하노래를 부른 뒤 직접 초를 껐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온 사방에 침이 다 튀었다. 맘껏 웃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생일상을 정리하고 피곤해 소파에 기대어 쉬고 있는데 첫째가 내 위에 올라탄다. 말을 타듯이 따그닥 소리를 내며 엉덩이로 내 등을 사정없이 내려찍는다. 아직 어린아이라서 몸무게는 얼마 나가지 않는데 생각보다 등이 아프다.
"그만하면 안 될까? 아빠 아픈데?"
첫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밌는지 계속한다. 한참을 당하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본 엄마가 웃으며 말한다.
"우리 아들 괴롭히지 마!"
난 좀 괴롭긴 하지만 딸의 장난이니 그려려니 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아니었나 보다. 아무리 손녀가 예뻐도 자기 배 아파 나은 아들이 먼저 보이는 걸까. 그러고 보니 엄마는 우리 집에 와서 한시도 둘째를 품에 떨어뜨리지 않고 돌봐주었다. 첫째는 아내를 좀 더 따르고 둘째가 엄마한테 가있으니 난 좀 여유가 있었다. 오늘 엄마가 왔으니 아들은 좀 쉬라는 배려였다.
두 딸이 아이를 낳으면 내게 어떤 기분일까. 손자손녀가 예쁘긴 하겠지만 내 딸들을 힘들게 하면 한편으론 밉기도 할까. 그럴 것 같기도 하지만 경험해 보지 않아 잘 와닿지 않는다. 언젠간 그런 날이 오겠지.
그렇게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첫째가 짜증을 낸다. 엄마가 첫째에게 산책 나가고 싶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좋다고 소리를 지른다. 엄마에게 첫째가 기저귀를 떼는 중이라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바로 집으로 들어오라고 이야기하는 도중 맘을 바꿔 나도 둘째를 데리고 같이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엄마 혼자 첫째를 데리고 나가면 고생할게 눈에 선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아내가 쉴 수 있는 건 덤이고 말이다.
어린 시절 본 만화영화에서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재밌게 보여준 기억이 난다. 혼자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긴 식기를 가지고 밥을 먹었는데 천국은 마음씨 좋은 사람끼리 서로 먹여주며 즐겁게 식사를 했고, 지옥에서는 나를 먼저 먹여달라고 싸워서 난장판이 되었다. 내가 여유가 없고 지치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힘듦을 생각해 주는 게 삶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특히 엄마를 대할 때, 아내를 대할 때 그렇다. 문제는 마음먹은 것과 행동은 별개라는 것이다. 이 또한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에 쉬운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