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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un 29. 2024

도움이 필요해 _ (D + 896일, D + 271일)

육아일기


 주말이 되면 아내와 나의 고민이 시작된다. 오늘은 어디를 데리고 나가지? 아내와 같이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나갈 때도 있고 나 혼자서 둘 중 하나만 데리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혼자서 첫째를 데려간다. 밖에서 여러 경험을 하면 좋을 시기니 말이다. 우리가 힘들더라도 밖에 데리고 나가는 이유는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활동이 다양하지 않아서이다. 집에서 어른 둘, 아이 둘이서 부대끼면 갑갑하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같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하루종일 집에 있다면 어른도 아이도 지치기 마련이다.


 오늘은 첫째만 데리고 키즈카페처에 가서 놀다가 근처 신세계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이고 집에 돌아오기로 했다. 오는 길에 첫째가 낮잠을 자준다면 10시쯤 출발해 집에 3시 넘어서 도착하는 나름 긴 외출이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키즈카페에서 재밌게 놀고 화장실도 잘 가서 평화롭게 외출이 진행되었다. 백화점에서도 메뉴도 잘 고르고 음식도 잘 먹어서 이제 잘 마무리하고 집에 가면 되겠구나 생각하던 차에 문제가 생겼다.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었기에 각각의 식당에 트레이를 반납해야 하는데 첫째에게 금방 갔다 올 거라고 설명하고 첫 번째 트레이는 무사히 반납을 마쳤는데 두 번째 트레이를 반납할 때는 나보고 가지 말라고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백화점에 음식 먹을 자리가 부족해서 한 가족이 우리 자리를 다음에 쓰려고 옆에서 기다렸는데 그 시선에 첫째가 부담을 느낀 것 같았다. 아기의자에 안전버클이 있어서 첫째가 움직일 순 없기에 내가 얼른 혼자 반납하는 게 제일 나은 선택인데 그걸 못하게 하니 난감했다. 한 손으로 트레이를 들지 못하니 첫째 손을 잡지 못하고 따라오라고 말하며 가야 하는데 인파가 많았고 그 사람들 손엔 뜨거운 음식이 들려있어 난감했다.  


 옆에서 기다리는 가족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며 금방 다녀오겠다고 첫째를 계속 설득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첫째를 먼저 앞세우며 트레이를 반납하고 오려고 아이를 아기의자에서 내리려는 찰나, 지나가는 사람이 자기가 트레이를 반납해 주겠다며 식당 이름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분에게 후광이 보이는 듯했다. 너무 감사해서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트레이 반납을 무사히 마치고 아내가 먹을 간식을 사서 집에 안전히 돌아오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각보다 많이 생긴다. 최대한 스스로 해결해보려 하지만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된다. 장모님에서부터 오늘처럼 모르는 사람까지. 그분도 아이를 키워봤기에 내 처지를 이해했을 것이다. 또한 그분 역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어려움을 넘긴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만 잘하면 되는 세상이라지만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미약한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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