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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ul 01. 2024

커나간다는 것_( D + 912일, D + 287일)

육아일기


 둘째는 발달이 늦은 편이다. 첫째가 7개월 전후로 기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둘째는 9개월이 됐는데도 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앞으로 가려고 용을 쓴다. 한 발짜국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뒤처지는 탓에 맘이 쓰인다. 이럴 때 떠오르는 말이 있다. 


 몸에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못 걷는 사람 있어? 


 맞는 말이다. 몸에 이상이 있지 않는 한 걷지 못하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 조바심이 나더라도 가만히 지켜보면 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첫째는 기저귀를 떼는 과정이 쉽지 않다. 처음엔 쉬가 마렵다고 화장실에 곧 잘 가더니 요즘은 쉬가 마려운데도 아니라고 우기다 결국 팬티에 싼다. 걸레로 바닥을 닦고 옷을 갈아입히고. 이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반복되니 지친다. 더욱이 요즘엔 우리한테 시위하듯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다시 거실로 뛰쳐나와 바닥에 오줌을 싼다. 


 아내와 나는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주말에 밖에 데리고 나가기도 애매해졌다. 카시트에 싼 오줌을 치워보니 이건 보통일이 아니다. 완전히 깔끔히 닦이지도 않고 말이다. 저번 주말엔 동물원에 데리고 갔는데 구경을 시켜주는 와중에도 계속 조마조마하다. 첫째에게 화장실을 갈 건지 물어봐도 계속 마렵지 않다고 대답한다. 아내에겐 비밀이지만 결국 구슬아이스크림 사 줄 테니 화장실에 갔다 오자고 꼬셔서 변기에 앉혔다. 자꾸 이렇게 조건을 걸면 안 되는데. 밖에 나와서 오줌 묻은 옷울 치우고 뒤치다꺼리하기 싫어 요령을 피우게 된다. 


 배변훈련은 앞의 문장을 적용하기에도 애매하다. 

 몸에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대소변 못 가리는 사람 있어? 


 물론 없다. 하지만 배변훈련이 잘못될 경우에 성에 대한 욕구가 뒤틀리는 등 많은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범죄자 중에는 어릴 때 배변훈련이 잘못되어 욕망이 엇나가게 된 경우도 있다고 말이다. 이러니 배변훈련할 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마음속에선 천불이 나지만 최대한 담담한 얼굴로 다음엔 변기에서 싸자고 침착히 말하며 바닥의 오줌을 치울 뿐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니 아내가 막막했던 걸까. 맘카페에 배변훈련에 대해 질문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처음엔 잘하다가 실수하는 일이 반복되고, 매일 실수하기도 한다고. 혹시 다른 아이들도 그런 거냐고. 답글이 달렸는데 다들 아이들이 실수를 많이 했고 힘들더라도 그냥 버티다 보니 이젠 실수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는 내용이 많았다.


 고마운 분들의 댓글 덕분에 아내와 나의 불안한 마음이 많이 가셨다. 그냥 이렇게 계속 버티는 수밖에 없겠구나. 버티다 보면 좋아지겠지. 어른 중에 몸에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대소변을 못 가리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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