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D + 925일, D + 300일)
고등학교 졸업 후 일 년에 한두 번, 친구들과 1박 2일로 여행을 가곤 했다. 바다도 가고 계곡도 갔다. 그게 쭉 이어져 요즘도 일 년에 한 번은 그렇게 놀러 간다. 그전에는 별생각 없이 놀다 오면 됐는데 요즘은 참석이 쉽지 않다.
작년 여행은 장모님이 1박 2일로 집에 와주셔서 다녀왔는데 이번년도에는 염치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이번엔 내가 사는 지역 근처로 숙소를 잡으면 안 되냐고 부탁을 했다. 흔쾌히 승낙을 해준 덕분에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숙소를 잡았고 나는 애들을 재우고 밤 9시쯤 출발해서 놀다가 다음날 아침 7시에 돌아올 생각이었다.
친구들은 일찍 만났다. 토요일 아침부터 스크린 골프를 치고 숙소 근처서 점심을 먹고 물놀이를 갈 예정이라고 했다. 집에서 육아를 하고 있던 나는 부러워 하다 순간 첫째를 데리고 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가서 첫째와 함께 점심을 같이 먹고 물놀이하다가 집에 와서 첫째와 둘째를 재우고 다시 숙소로 가면 될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니 당연히 첫째를 데리고 와도 된다고 해줘서 고마웠다. 사실 아이들이 끼면 처음엔 귀엽더라도 여러모로 불편한게 사실이다. 다들 누군가를 챙기며 놀고 싶은 생각은 없을 테니 말이다.
점심을 먹기위해 식당으로 갔는데 첫째가 잠이 들었다. 낮잠 잘 때도 됐고 잠든 지 얼마 안돼서 그냥 차에서 재웠다. 친구들에게는 수육이나 좀 포장해 달라고 했다. 친구들이 점심을 다 먹자 숙소로 향했다. 아직도 자고 있는 첫째. 숙소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도 잠에서 깨지 않아 계속 차에서 기다렸다. 친구들은 숙소에 짐을 풀고 물놀이를 하는지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첫째가 일어났다. 부시시한 첫째를 데리고 친구들과 인사하니 첫째가 부끄러워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 많아 어색한 것 같았다. 다시 친구들은 물놀이를 시작했고 첫째에게 물어보니 물놀이를 하고 싶다기에 옷을 갈아입히고 튜브를 챙겨 수영장으로 향했다. 첫째는 튜브에 둥둥 떠다닌 게 다지만 친구들이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재밌는지 시선을 떼지 못한다. 한참을 놀다가 첫째가 추워하는 것 같아 숙소에 돌아와 씻기고 정리를 했다. 재밌었다는 첫째의 밝은 모습에 기분이 좋다.
친구들은 간단히 맥주를 마신다. 나도 시원하게 한 잔 하고 싶지만 운전해야 하기에 꾹 참는다. 이제 오후 5시. 6시 넘어서 밥을 먹는 다길래 얼마 뒤 집에가야 하는 나는, 간단히 소고기를 구워 코코에게 먹이기로 했다. 소고기가 맛있는지 금방 다 먹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카시트에 탄 첫째가 재밌었다며 다음에도 아빠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집에 돌아와 정리를 하고 둘째 이유식을 먹이는데 마음은 콩밭에 가있다. 카톡방에 올라오는 바베큐와 술, 장어에 마음이 심란하다. 나도 먹고 마시고 놀고 싶은데 육아의 의무가 있기에 참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흘러 약속의 8시가 되었고 아이들을 재우기 시작했다. 조급한 아빠의 마음을 알았는지 금세 잠이 들었다. 침실에서 나오려고 부스럭 대는 순간 첫째가 깬 것 같았다. 그때 아내가 조용히 속삭인다. "얼른 나가. 재밌게 놀고." 다시 재우려고 누웠다면 30분은 걸렸을 수도 있는데 아내의 배려로 놀러 갈 수 있게 되었다.
도착해서 보니 친구들이 내가 먹을 걸 남겨두어 장어도 고기도 먹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 한잔 하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아이들 걱정 없이 얘기도 하고 맥주도 마시고. 전엔 당연했던 게 이제는 여러 사람의 배려를 받아야 누릴 수 있는 사치가 되었다. 힘들긴 해도 이렇게 아내와 주변 사람들이 마음을 써주는 덕에 육아를 문제없이 있어나갈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