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퇴근 전 아내와 저녁으로 뭘 먹을지 정하곤 한다. 오늘은 냉동실에 있는 육개장을 데워서 간단히 먹기로 했다. 육개장으론 부족하니 계란프라이를 넉넉히 해서 먹자고 말했다. 메뉴가 좀 부실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차피 아이들과 같이 먹으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 그냥 배만 채우면 된다.
한참 뒤에 다시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아내가 첫째의 저녁으로는 소고기를 구워준다고 한다. 순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소고기를 살 거면 좀 넉넉히 사서 같이 구워 먹으면 되지 왜 조금만 사서 애들만 구워준다고 하지? 나는 입도 아닌가? 소고기 가격이 비싸 부담이 되면 그냥 돼지고기를 구워 먹어도 될 텐데.
그전에도 우리는 간단히 먹고 첫째는 소고기를 먹인 적이 몇 번 있었다. 지금과 다른 점은 그때는 아내와 내가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내 자발적 의사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가장 큰 차이점은 오늘은 나도 소고기가 먹고 싶단 것이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육개장은 도저히 못먹겠다고. 아내가 그럼 첫째를 하원시키고 정육점에 가서 구워 먹을 소고기를 사 오라고 한다. 오케이. 그동안 소고기 못 먹은 한을 풀 기회가 내게 왔다.
유모차를 끌고 정육점으로 향했다. 한우를 살펴보니 기본적으로 1인분에 2~3만원은 한다. 평소 같으면 돼지고기 목살을 샀겠지만 오늘은 맘껏 골라 담았다. 업진살, 채끝살, 부챗살, 등심. 결제를 하니 12만 원이 넘는다. 아내와 나, 첫째 세 명이 먹기엔 많은 양이지만 덜지 않았다. 정육점 사장님이 기분이 좋으신지 파채와 마늘 등 다양한 채소를 챙겨주셨다.
집에돌아와 아내에게 보여주니 많은 소고기양에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실컷 먹어라."
아내의 핀잔을 뒤로하고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첫째에겐 푹 익힌 고기를 줘야 하니 아내와 내가 먼저 한 점을 먹는다. 적당히 익은 소고기를 소금에 찍어 먹으니 살살 녹는다. 역시 소고기는 다르다. 첫째도 잘 먹는다. 쌀밥은 건드리지도 않고 고기만 집어 먹는다. 비싼 건 알아가지고. 이미 이유식을 먹은 둘째는 징징거릴 때마다 쌀과자를 쥐어준다. 맛있는 걸 먹지 못하고 떡뻥만 먹는 둘째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깐. 고기에 집중했다.
한참을 먹고 나니 고기가 물린다. 마지막으로 등심을 구웠는데 배가 부르니 소고기가 질리는 느낌이었다. 남길 수는 없어서 결국 소고기로만 배를 다 채웠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많은 것을 양보하게 된다. 특히 먹을 건 더 그렇다. 첫째가 달라고 하면 그 좋아하는 계란프라이도 양보한다. 오늘은 그동안 쌓인 서러움이 터져 나온 것 같다. 맛있는 걸 먹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단지 참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