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오늘은 첫째 어린이집의 체육대회 날이다.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일정이었는데 일정표를 보니 아이부터 부모, 가족까지 다양하게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며칠 전엔 율동을 연습하라고 동영상 두 개를 공지받았다. 동요와 응원가에 맞춰 동작을 따라 하는 건데 어렵지 않아 미리 외워두웠다. 퇴근 후 첫째와 함께 동영상을 틀어놓고 동작을 연습하면 둘째도 신이 나서 엉덩이 춤을 추곤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를 했다. 드레스 코드는 흰 티에 검은 바지. 나는 마땅한 옷이 없어 저렴한 맨투맨 티와 트레이닝복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씻고 옷을 입고 짐을 챙겼다. 관건은 둘째였다. 체육대회가 진행되는 시간이 낮잠시간인데 그때 잠을 자주면 아내와 나 첫째가 편안히 참여할 수 있을 테고 잠을 자지 않고 칭얼거리면 한 명이 계속 둘째를 돌봐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었다.
체육관에 도착하니 준비가 체계적으로 되어있어 놀랐다. 대행업체와 같이 했을 테지만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고생했겠구나 싶었다. 가슴팍에 첫째의 가족이란 스티커를 붙이고 행운권을 받아 백팀으로 향했다.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으니 평소 안면이 있던 분들이 속속들이 모여든다. 간단히 눈인사를 하고 나는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체육관 가장자리를 왕복하며 재우기 시작한다.
사회자가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체육대회의 시작을 알린다. 첫 번째 순서로 아빠가 아이를 안고 있으면 선물을 준다고 하는데 나는 둘째를 재워야 해서 참여할 수가 없다. 멀리 첫째의 시무룩한 눈빛이 보인다. 마음은 급한데 둘째는 이 마음을 아는지 잘 생각이 없다. 국민의례, 원장선생님 말씀 등등 관련절차가 진행되고 이제 체육대회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의 눈이 감긴다. 다행히 아빠와 함께하는 코너는 시작되기 전이었다.
둘째가 완전히 잠들자 유모차를 잘 세워두고 체육대회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OX퀴즈에서 최후의 3인까지 남아 선물을 타고 신발을 던져 바구니로 받기도 잘해서 선물을 받았다. 엄마들의 2인3각 달리기도 재미있었고 아이들의 50m 달리기에서는 첫째가 1등을 해서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재밌어하는 첫째의 표정에 여운이 남는다. 인생 첫 체육대회에서 추억을 쌓는 모습을 보니 어느새 이렇게 컸나 싶다.
콩주머니 던지기, 구름다리, 진지했던 부모들의 이어달리기가 마무리되는 장장 두 시간 동안 둘째는 깨지 않고 잠을 잤다. 아내와 나는 오늘 제 역할을 제일 잘해준 건 둘째라며 기분 좋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행운권 추첨순서가 됐는데 상품의 크기가 컸다. 나름 선물을 받았지만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MVP, 3등, 2등. 계속해서 당첨되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1등 상품인 자전거만 남았다.
"당첨!"
처음이었다. 이런 행운권 추첨에서 1등이 당첨된 건 말이다. 첫째는 벨런스 바이크를 받았는데 평소에 사달라고 조르던 자전거였다. 아내와 나는 위험할까 봐 사주는 걸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선물을 타자마자 자전거에 올라탄다. 기분이 좋은지 연신 발을 구르며 자전거를 타는 첫째 모습이 사진 찍듯 가슴에 남는다.
기대했던 것보다 재밌었던 체육대회가 끝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받은 선물을 뜯는데 키친타월, 제티부터 자동 비눗방울 기계까지 다양하다. 짐을 정리하고 나서 쉬려는데 첫째가 비누방을 기계를 가지고 산책을 나가자고 조른다. 기계를 조립하고 건전지를 넣은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간다. 체육대회를 해서 피곤할 법한데도 에너지가 넘치는 첫째를 보니 정말 애들은 체력이 대단하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