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를 다녀와서 ('16.11.12)
익숙한 거리를 지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유난히 파란 하늘 때문인지 설레는 기분이 들었지만 순간 '이래도 될까?' 하는 낯선 죄책감이 들었다. 친구와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얘기했다. 언론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친구여서 그런지 아는 게 참 많다. 가벼운, 때론 무거운 주제로 대화를 주고받다가 시청역으로 향했다. 친구와 함께여서 그런지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가득 찬 사람에 순간 놀랐다. 주최 측 연사의 발언에 멀리 퍼지는 스피커 소리와, 그에 답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웅장하게 느껴졌다. 부모의 손을 잡고 거리에 나온 어린아이부터 무거운 몸을 이끌고 피켓을 들고 계신 노인들까지.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부산한 느낌은 아니었다. 친구와 나는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시청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대로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기에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크게 돌아갔다. 사람들에 손에 쥐어진 피켓들 사이로 색색의 단풍이 보였다. 아름다운 가을날이었다. 슬프게도.
길거리엔 호외와 피켓이 뿌려져 있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호외에 이번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대로에 진입할 때쯤 '대한민국을 바꿔라.'라는 배지를 받게 되었는데 이걸 나눠준 학생은 이름이 명확히 새겨져 있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오는 어른도 있는데 괜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집회에 참여하며 여러 번 소름이 돋았다. 그중 가장 강렬한 느낌을 받은 건 거리를 정리하는 분들을 봤을 때였다. 사람은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하라 했다. 단상 위에 올라 열변을 토하는 사람이 아는 것은 더 많겠지만 이들보다 진실할 순 없을 것 같았다.
65만 명, 85만 명. 속보로 전해지는 집회 참가자 수를 보며 역사적인 현장에 있다는 사실에 묘한 흥분이 되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사람들은 하나 둘 촛불을 들었다. 친구와 나는 조금 더 걸어가 보기로 했다.
마침내 100만 명이 운집했다는 속보가 떴다. 친구는 내심 놀라워하면서도 주최 측과 경찰이 내놓은 결과를 더해 반으로 나누어야 정확한 통계가 될 거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촛불 집회가 시작된 이후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어 일찍이 자리를 벗어났다. 다행히도 후에 접한 기사를 통해 정식 집회에서 무력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치는 삼류, 국민은 일류.
이번 집회에 참여하며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말이다. 100만 명이 넘는 일류 국민의 하나 된 목소리로 거대한 주사위가 던져졌다. 이제 이런 묵직한 정치적 모멘텀이 삼류 정치에 휩쓸리지 않도록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