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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Nov 17. 2016

님아, 그렇게 건너지 마오



 마트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새로 산 줄넘기를 손에 쥐고 터벅터벅 걷다가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멈췄다. 걸으면 생각이 많아진다던데, 그래서 그런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 나이 28살.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하는 노력이 충분한 걸까.


'아니 충분하지 않다.'


 길가에 쓰레기를 줍고, 작은 꽃을 심는 것과 같이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상투적인 변명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하루를 오롯이 살아내는 것조차 가끔은 힘에 부친다. 그렇게 게으름을 합리화한다. 평범한 일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비범함이라는데,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불쑥 솟아난다.



 초록 불이다.


 딴생각을 하다가 신호가 켜진 것도 몰랐다. 반대편에 한 아저씨가 보인다. 초록 불은 다급히 깜빡거리고 있는데 아저씨는 이제 막 횡단보도에 도착하셨다. 머뭇거리시기에 자세히 보니 한 손에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쥐고 계셨다. 다음에 건너시겠지. 혹시나 부딪힐까 멀찍이 돌아서 지나갔다.



 빨간불이다.


 아저씨는 지팡이로 바닥을 몇 번 두드리시더니, 그대로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빨간불이라구요!'  턱 끝까지 다급함이 차올랐지만, 왠지 모르게 내뱉지 못했다. 절반쯤 건너가는데 반대편에서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저씨는 어느새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린 채 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 한 걸음. 반대편 자동차도 아저씨를 발견한 듯 속도를 줄인다. 그렇게 아저씨는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신호등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새빨간 경고를 보내고 있단 사실은 자동차 소음에 조용히 묻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빨간불이라고 소리치지도 못했고, 같이 건너가 드리지도 못했다. 단순히 길을 건너는 것에 저렇게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니. 죄책감이 엄습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웃기는 일이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무기력하다. 요즘 운동을 쉬어서 그런 거겠지. 손에 쥔 줄넘기가 문득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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