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거 안된다
INFP의 주기능은 감정이고, 가장 열등한 기능은 사고 기능이다. 논리적, 체계적, 구체적, 근거, 팩트.. 이런 단어를 들었을때 INFP들은 뭔가 차갑고, 정 없고, 괜히 어려운 숙제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이 단어들을 '감정'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인데, 애초에 이 단어들은 감정이 배제된 상태로 인식해야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는게 문제다.
반대로 사고가 주기능인 ISTP, ESTJ, INTP등이 위와 같은 단어들을 접했을땐 불분명한 것이 명확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냉정한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INFP들의 말에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현대 문명은 과학적 패러다임 위에 세워졌고, 과학적 패러다임은 그 자체가 논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 칼 포퍼는 과학의 속성을 '논리적 근거를 갖고 비판할 여지가 있는 사고 체계' 라 말했다. (정확히는 모른다. INFP들은 구체적인 거 그런거 신경 안쓴다. 의미만 전달되면 됐지) 세상 만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가?우리는 모든 것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고 있지만, 엄연히 이 명제에도 반박의 여지는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슬프다' 라는 감정의 표현은 반박도, 입증도 못한다. 개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이니까.
감정이 주기능인 INFP 입장에서 당연히 세상을 살면서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논리적 체계를 바탕으로 한 과학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이성' 은 격이 높은 것, '감정'은 하찮은 것으로 취급받기 일쑤였으니까. '감정적' 이라는 말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긴 것도 그 예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글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는데 애를 먹는다. 실은 대충 의식의 흐름대로 쓰고 싶은 마음이 늘 굴뚝처럼 솟아오르곤 한다. 열심히 논리적으로 쓴 후 사고형 친구에게 보여주면 꼭 어느 부분이든 지적 받는다. 그럼 나는 반발한다. '아니 그게 왜 중요해?'
방송에 나와 지식을 전달하는 에듀테이너들은 늘 사고형 학자들에게 욕을 먹곤 한다. 더이상 설민석을 볼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INFP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으면 각자 공부하면 되고... 설민석은 그냥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표현하는 사람 아닌가?' 어느 쪽이 맞다고 볼 순 없다. 아니지, 이렇게 말하는 것 역시 그저 INFP의 생각일 뿐. 사고형 사람들은 '아니 역사를 전달하는데 기록 문헌에 근거한 팩트가 중요하지 무슨...?'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감정이 주기능인 INFP들이 지식을 전달할 때면, 주로 감정의 흐름에 맞는 요소들을 끼워 맞추려는 경향이 크다. 역사 이야기는 주로 인물 위주로 한다. 금화를 화폐로 쓰는 어떤 나라에 갑자기 금 유입량이 늘어 인플레가 와서 실물 경제가 무너지는 바람에 기존 통치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떨어져 새로운 리더가 나타났는데 이 사람은 장기 집권을 위해 경제 전문가들을 데리고 이 문제를 해결했다... 라는 역사가 있다고 하자. INFP 라면 이것을 '탐욕스런 독재자를 물리치고 백성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 나타났다!' 라고 설명하지 않을까?
감정 개입이 어려운 주제는 설명하기가 무척 힘들다. '유기화학에서 두 화합물이 합쳐질때 내부의 전자 구름 이동' 같은 것은 대체 어느 부분에 감정을 끼워넣어야 할지 애매하다. 전자를 귀여운 팩맨으로 만들어 이리저리 점프하는 방식으로? 근데 그건.. 정확한 설명이 될 수 없잖아!
그냥 논리와 사고 부분은.. 나중에 언젠가 계발되는 거고 지금은 포기하자~ 라고 마음 먹는 것이 INFP들의 정신 건강에 좋다. INFP들이 논리를 구성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사고형 사람들은 울화통이 터질지도 모른다.
1)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
2) 돈이 있어야 가방을 살 수 있다.
3) 결론 : 일을 해야 가방을 살 수 있..아니 근데 가방 사기 싫은데? 그럼 일 안해도 되지?
논리적 사고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흐름이 만들어지는데, 감정형인 INFP들은 자꾸만 감정의 흐름에 논리적 사고의 흐름을 맞추려고 한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다가도 감정의 연료가 소모되면 더이상 생각을 멈춘다. 불을 때워야 엔진이 작동하는 것과 같다.
아까부터 나는 최대한 딱딱한 문체로 논리적 구성을 지어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힘이 빠진다. 그래서 여기서부턴 어떻게 글을 마무리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제목 외에 내가 이 글을 통해 어떤 결론을 내릴 거란 계획 자체를 안세웠다. 어떡하지?
조금 힘이 빠지지만.. 그 외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아무튼 INFP들이여, 너무 논리적으로 사고하려 노력하지 말자. 본인의 강점은 다른데 있으니까. 짧은 인생 자기 강점에만 집중해도 빠듯한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