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나타내는 의미
진정한 친구는 두 명, 많아야 세 명이란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만 적용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전세계적으로 이와 비슷한 말들이 전해내려온다고 한다. 아마도 여기엔 어떤 심리적 원리가 숨어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친구는 어떤 친구인가? 단순히 나와 마음이 잘 맞거나 오랫동안 연락하고 만난 친구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살다보면 나와 잘 통하는 친구, 오래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들은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줄'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할' 친구들은 역시나 두 명 내지는 세 명을 넘지 않는다는게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로 '진정한 친구' 에 대해 우리가 늘 그 친구를 항상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만 갖는다거나 그 친구가 늘 잘되기를 바라고 어려울 때면 어떻게든 도와주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득한 것도 아니다. 당연히 우리 모두는 사람인지라, 시기와 질투도 나고 내가 힘들 땐 그 친구가 괜히 밉기도 하고 그렇다. 그러나 그 친구들을 떠올리면, 언젠가 우리는 같은 운명 공동체 안에 속해 있어 미우나 고우나 끝까지 챙기고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런 친구들은 심리적으로 자기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두 명. 그래서 진정한 친구도 두 명. 결국 어린 시절 우리에게 아버지, 어머니의 역할이었던 자리에 친구 두 명을 끼워넣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친구' 들에게 어머니, 아버지같은 역할을 기대하고, 또 때로 그들에게 어머니,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곤 한다. 그 과정에서 기대가 무너지면 서로 오해가 생겨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자리에 한 번 들어선 이상 우리는 그 친구를 또다시 찾게 된다. 언제 어디서든 어머니, 아버지가 내 곁에 있을거라는 기대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실은 그래서 그런 친구가 세 명이 있다면, 그 중 한 명은 분명 나머지 두 명 보다는 마음이 조금 덜 쓰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마음 속 어머니 아버지 자리는 두 명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 명이라 말하는 사람은 그 차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나머지 둘만큼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가 추가로 한 명 더 있다고 느끼고 있는게 아닐까. 물론 또 하나의 가능성은 있다. 바로 형제, 자매의 빈자리다. 형이나 언니, 혹은 동생의 자리라는 심리적 공간에 그 친구를 끼워넣고 있는 것일지도.
그냥 내 생각이다. 친분의 깊이와 상관 없이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는 말엔 이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