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계산을 다시 해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프린스턴대 교수인 앵거스 디턴, 대니얼 카너먼은 2010년 소득과 행복 사이의 관계를 조사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08~2009년 미국인들을 상대로 연구를 해봤더니 연봉 7만 5천불 이상에서는 행복과 소득이 별 관련이 없었다고 한다. 이 연구는 그 후 사람들이 마음의 위안을 삼는데(?) 자주 써먹히곤 했다.
물론 직감적으로나 경험적으로도 무조건 소득 수준이 높다고 행복감이 같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데엔 다들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 그러나 여기, 중요하게 지적해야 할 부분을 다들 놓치고 있다. 한 사람의 경제적 수준을 결정하는 데 있어 소득이라는 요소는 어쩌면 매우 작은 일부분에 불과할 지 모른다는 점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노동 소득의 생산성보다 자본의 생산성이 이전보다도 훨씬 큰 폭으로 커지고 있다. 그 뿐 아니라 한 국가의 전체 산업 구조 중 수출 산업 비중과 내수 시장의 크기, 천연 자원과 관광 자원 등 안정적인 산업의 구성 비율에 따라 개인의 소득 안정성이 매우 크게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처럼 예측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고, 세계 정세 변화에 따라 특정 국가의 경제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면, 지금 현재의 개인 소득이 그 사람의 경제 수준에 미치는 영향은 더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의 수출품 Top 10을 보면 전부 제조업품 혹은 원자재 가공품들이다. 반면 수입품 Top 10을 보면 원유와 가스, 석탄 등 원자재와 에너지류가 많다. 무역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 구조 자체가 수출과 원자재 가격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어 우리 통제 범위 밖에 있는 세계 정세에 크게 휘둘리게 된다.
이런 나라에서, 물가 인상률과 국가 차이를 감안하지 않고 디턴과 카너먼의 연구대로 7만 5천불 정도가 소득과 행복 관계를 결정하는 최대 소득치라고 가정해 보자. 한화로 치면 연봉 약 8500정도 되려나?
문제는 이 연봉 8500이 생애주기 내내 보장되어야 한다는 거다.
2018년 기준으로 연봉 8천 이상의 비율은 6.8%에 불과하다. 헌데 여기에 속한 사람들이 50대가 되고 60대가 되어서도 저 연봉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그 때부터는 자산으로 버텨야 한다. 최대한 버틴다고 가정하고, 60대 이상부터는 일을 계속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으니 연금으로 연 1500, 나머지 7000을 자산으로 뽑아먹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세금이고 뭐고 다 신경 끄고 단순 계산으로 연 4% 수익률 (요즘은 안정적인 연 4% 수익률도 무척 힘들긴 하다만) 로 계산하면 수익을 내는 자산가치 (부동산, 주식 등) 17억 5천 정도가 필요하다. 아 물론, 이는 집 값 제외다.
서울 평균 집값인 8억을 계산에 넣어 볼까? 그럼 대략 25억 5천 정도가 나온다. 다시 말해 60대 은퇴하기 전까지 연봉 8500을 유지하고 자산 25억 5천 정도를 모을 수 있다면... 대략 돈 때문에 행복감이 감소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되겠다.
헌데 연봉 8500인데 60대까지 자산 25억 5천을 어떻게 모아?
뭐 물려 받거나, 아니면 실제 연봉은 8500보다 훨씬 더 높거나..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다.
그런데 일단 연봉 8500 이상을 60 전까지 유지하는 것 자체가 가능한 직업이 얼마나 될까?
결론을 짓자면, 디턴과 카너먼의 행복-소득 연구가 참이라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연구는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아무런 마음의 위안꺼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있어 돈은 많이 벌수록, 물려 받은 것이 많을수록 행복은 비례해서 증가한다. 그러니 돈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모습에 조금도 반성(?)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물론 인생에서 돈보다 중요한 것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쓸데없는 연구를 들이밀며 마음의 위안꺼리를 팔아먹는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