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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과 리스크

by rextoys

창이나 활을 쏘아 사냥을 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원시시대.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남들보다 손쉽게 사냥감을 잡았고, 그로 인해 부족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또한 그의 능력에 반한 여자들 중 몇 명과 짝짓기를 하고 자손을 보았으며, 그의 능력 덕분에 가족들은 안락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는 자존감이 높았을 것이고, 자기 인생에 무척 만족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의 자손들은 그런 그의 피를 물려받아 다들 사냥 능력이 뛰어났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러 현대에 오자, 그의 자손들이 가진 사냥 능력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졌다. 그 자손 중 한 사람을 'A'라고 해보자. A는 어려서부터 국영수 위주로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했으며, 들판을 뛰어다니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지만 근처에 뛰어 놀 마당도 없다는 사실에 그는 툭하면 우울해지기 일쑤였다.


각자에게 삶의 목적은 존재한다. 바로 각자 타고난 능력을 이용해 추구하는 것을 얻는 것 - 삶의 목적이란 이처럼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다.사람들은 모두 타고난 능력과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 당연히 사람마다 삶의 목적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목적을 찾는다는 것은 요즘 말로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사는 것을 뜻한다. 언제부턴가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인 자존감이라는 말도, 결국은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살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성취할때 높아질 수 있는 심리적 보상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높은 자존감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호르몬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 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며, 그래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자기 인생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들 한다.


다시 A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A의 조상은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을테지만, A는 그러기 쉽지 않다. 일단 자신이 타고난 사냥 능력을 써먹을 데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진화는 천천히 진행되었지만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해 버린 탓이다. 그래서 A는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즉 타고난 대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남들에게 맞춰 살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해서.


A와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 고도로 복잡해진 사회 속에서 자기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냉혹하다. 한 개인이 무슨 능력을 타고났고, 어떤 삶의 목적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챙겨주지 않는다. 그저 그 때 그 때 생존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주어질 뿐이고, 그 때마다 그것을 잘 따를 수 있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좀 더 자기 만족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A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아마 유사 이래 수많은 사람들의 말못할 고민이자 그동안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사는 인생에 대해 다룬 수많은 이야기들이 던졌던 물음이었을 것이다. 시대를 잘 타고난 것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은 상당히 큰 리스크를 짊어지는 삶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유관순은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다. 헌데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삶이다. 대체 신념이 뭐길래 굳이 그런 고통스러운 고문을 참고 끝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한 가지 추측을 해 볼 수는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사는 것이 너무나 강력하게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다른 모든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삶의 태도를 지키도록 뇌구조가 설계 되어 있다는 것. 또한 만약 그런 삶의 태도를 저버려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느끼는 머리를 갖고 태어났다는 것. 유관순은 바로 그런 타입의 사람이며, 따라서 자기 신념을 지키며 살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느끼는 사람이었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로 인해 그녀가 짊어져야 했던 리스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고문과 끔찍한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사는 것이 그 정도로 큰 리스크를 져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는 그 덕분에 육체는 고통스럽겠지만 죽는 순간까지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고 짧지만 스스로에게 만족한 삶을 살다 갔다고 느꼈을 것이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탁월한 능력을 갖고 태어났거나 운이 좋게 부유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닌 한 대부분은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살 경우 걸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남이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길을 선택한다. 그로 인한 보상은 현실적인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삶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만족스러운가? 그에 대해서는 자기 외에 그 누구도 답해줄 수 없다.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돌아봐야 할 문제다. 때로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하기도 하다. 사람마다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저 현실에 적응해서 사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곧죽어도 자기 모습대로 살아야만 만족할 수 있다.


살다가 어느 순간 자기 삶에 대해 회의가 느껴지거나, 공허감과 고민이 늘었다면, 스스로가 후자의 타입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내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 있고, 모두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내게는 가장 중요할 수 있다. 그런 판단 조차도 스스로 살면서 경험하고 사색하며 내려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 오래 걸릴 수 있다.


다시 A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사냥 능력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쓸모가 없긴 하지만, A는 그 대신 양궁이나 모의 사냥 등의 취미를 찾아볼 수 있다. 아니면 사냥 능력과 관련된 여러가지 - 빠른 동체시력과 손 힘 등등이 필요한 - 일들을 찾아볼 수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돈을 버는 데는 아무런 쓸모가 없거나 오히려 돈을 깎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A가 만족스런 삶을 산다고 느끼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비용일 수 있다. 그 누구도 이해 못하더라도.


어떤 이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리스크를 져야할 수도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예술을 하는 사람은 어떨까? 그냥 먹고 살기 좋은 길을 택해 성실히 살면 될 것을 그는 왜 굳이 예술을 택했는가? 예전에 시나리오 작가로 살면서 돈이 없어 비관한 끝에 자살한 사람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이해 안되는 삶이지만, 그는 어쩌면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던 사람일 수 있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으며, 그가 그렇게 살지 않고 다른 현실적인 길을 선택했다면 어쩌면 그는 더 이른 나이에 우울증으로 단 한 번도 삶의 만족을 느끼지 못한 채 자살했을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그는 최선을 다 한 것이고, 그저 세상 운이 없었을 뿐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입버릇처럼 인생은 한 번 뿐이다 라든가, 인간은 어차피 죽는데 언제 죽는지 잘 모르니 허무하다, 라고 쉽게 말하지만, 누구든 자기 인생 리스크 거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손쉽게 만족스러운 인생을 사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그냥 대세에 따라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만족스럽다는 사람들이 따로 있을 뿐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돼' 이런 주술 같은 생각은 인생을 한 치도 바꿀 수 없으며 자존감에도, 인생 만족도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돈이란 원래 low risk low return, high risk high return이 진리다. 그런데 이는 인생 그 자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생의 경우 risk는 때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클 수도 있다.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잃고, 빈곤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사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닐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전에 없던 문제들이 나타날 수 있다. 오랫동안 친했던 친구와 멀어진다든지, 직장에서 별 성과를 내지 못한다든지, 갑자기 앞이 꽉 막힌 것처럼 인생이 잘 안풀린다는 것을 느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사는 것으로 인해 발생한 일들일 가능성이 높다. 인과관계를 찾기 어려울 뿐이다.


남 하는 대로 따라 사는 것은 남들만큼 살아갈 수 있는 최적의 길이다. 그렇게 사는 것은 결코 잘못된 삶이 아니다. 리스크를 지지 않고 안전한 길로 가는 것만큼 좋은 인생도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 삶이 이유 없이 괴롭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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