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종교적 존재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만이 아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한 개인이 믿는 신념체계 모두를 종교의 범위에 포함시킨다면 말이다. 굳이 '종교적 존재' 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만큼 무엇인가를 강하게 믿는 성향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사람은 누구나 직감적으로 자신을 불완전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반드시 챙겨 놓는다. 다만 사람에 따라 믿는 대상의 종류와 믿음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이를테면 '성실하게 살면 보상 받는다' 라는 말도 그저 종교적 교리와 다를 바 없다. 내세울 것이 성실함 밖에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말에 대한 믿음도 그만큼 강해진다. 그런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나 자식에게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고 끊임없이 강조하며, 주변에서 성실보다 요령으로 큰 이득을 얻은 사람들이 보이면 비난을 퍼붓는다. 자신의 신념 체계가 깨지는 것이 두려우니까.
모든 아이는 자기보다 먼저 인생을 살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책임지는 사람이기도 한 자기 부모를 믿을 수밖에 없다. 자기 몸을 구성한 유전자를 제공한 사람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런데 자라는 과정에 이같은 믿음이 깨지는 사건들이 지속되면 - 정서적, 육체적 학대 혹은 생존 자원을 제공해주지 않는 경우 - 마음 속 믿을 대상의 자리가 텅 비게 된다. 자라면서 아이는 이 빈자리를 채워줄 믿음의 대상을 다른 누구보다 더 강렬하게 원하게 된다.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노예처럼 일하며 학대받아온 아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언론에 몇 번 방영된 적 있다. 사이비 종교 교주는 부모가 없거나 부모에게 학대받아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을 공략한다. 아이들은 믿고 의지할 대상을 준 대가라고 생각하며 사이비 종교 단체의 요구를 곧이 곧대로 들어주게 된다.
그런데 사이비 종교 뿐 아니라 세상 여기저기 곳곳에서 이런 비슷한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곤 한다. 전체 플롯은 비슷하다. 착취할 노예를 찾아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은 결핍이 심한 사람들을 찾아 자신이 만든 보상 시스템 안에 가둔다. 이 때 착취에는 단순히 노동 제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적 착취, 감정 착취 등 착취자의 욕망을 채워줄 모든 것이 착취물에 포함될 수 있다.
다만 착취 여부는 그 기준이 매우 모호해서 개인 입장에서는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최저시급에 가까운 돈을 주면서 가난한 근로자들을 과도하게 부려먹는 사업주는 과연 착취자라고 할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을 다 지켰다면 법적으로는 착취 여부를 밝히기 쉽지 않다. 근로자가 잘릴 것이 두려워, 혹은 다른 곳에 재취업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그 사업장에서 과로를 했다면, 문제는 사업주에게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근로자의 마음 상태에 있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근로자 개인의 결정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이런 애매한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 세상이 그만큼 개개인에게 우호적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착취' 라는 험한 용어를 써서 그렇지 때로는 어느 정도 손해를 보고 남이 원하는 것을 더 많이 해주며 사는 것이 장기적으로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가 꽤 많다. 결혼한 가정에서 시댁 혹은 처가쪽에 어느 정도의 서비스와 재화를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결국 본인이 결정할 문제이긴 하지만 어느 때는 착취 당하는 것이 모두의 평화를 위해 필요할 때도 있다. 그 역시 남들은 판단해주기 어렵다.
허나 개인 입장에서 스스로가 믿고 있는 신념체계가 과연 무엇인지, 종교를 갖고 있든 아니든 스스로 종교처럼 믿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과학적 패러다임 역시 실은 하나의 종교에 가깝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과학적' 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과학이란 말을 '진리'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거 봐. 그 사람 예상대로 행동하잖아. 과학이라니까." 처럼 별 상관 없는 곳에도 '과학'이란 말을 붙여 문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그 뿐인가. '합리적' '이성적' 이라는 말 역시 어떤 종교적 신념체계의 하나처럼 쓰일 때가 많다. "아니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이 정도 해줬으면 너가 나한테 저 정도는 해줘야 되는 거 아냐?" 라는 식으로 말하면, 쉽게 반박하기가 어려워진다. 합리적으로 이치에 맞는 것이 마치 무슨 조물주의 원리처럼 들린다. 우리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이미 합리나 이성 같은 사고 체계를 종교로 받아들여 버렸다는 소리다.
"널 고용해준 사장에게 월급 받으면 당연히 너가 아래지" 이 말은 당연한 소리인가? 여기서 '아래' 라는 말은 고용 관계에서의 갑을 관계를 말할 뿐, 현실에서는 더 아쉬워하는 사장이 직원보다 아래 입장에 위치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모든 신념 체계를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실은 그 어떤 것도 강제성이나 당위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합리성과 이성, 자본주의적 규칙과 과학적 패러다임을 종교처럼 믿고 있어야 세상이 안정되게 유지되기 때문에, 이런 신념체계를 가급적이면 다들 공격하지 않으려 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매우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동물이며, 전쟁이나 국가간 충돌이 있는 상황에서는 합리고 이성이고 과학이고 뭐고 다 쓸모 없는 것으로 변해버린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깨지는 순간이, 사실은 인간과 세상의 가장 진실된 모습일 수 있는 거다. 인간은 결국 알고보면 충동적이고 자신의 욕구 충족을 최우선으로 하며 위험한 것을 피하는 짐승이라는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역사적으로 검증된, 세상에서 가장 믿을만한 신은 어쩌면 '돈'이라고 할 수 도 있다. 더 정확히는 화폐로서의 '돈' 보다는 '소유권'을 말하지만, 그 모든 것을 돈 가치로 환산할 수 있다는 데서 그냥 이해하기 쉽게 '돈'이라 부르기로 하겠다.
돈은 모두가 숭배한다. 돈으로 산 소유물의 소유권은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다. 전쟁을 겪어 완전한 폐허가 된 이후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 생존마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고.. 그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이 세상에 돈을 대체할 수 있을만큼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돈을 갖고 있으면 우리 모두 전능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돈을 들고 있는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으며 나의 호감을 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한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돈만큼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없다. 그야말로 MONEY THE GOD 이 아닐 수가 없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혼돈이 가중될수록 돈이라는 신의 전능함은 그 위력을 더욱 크게 발휘한다. 불안에 떠는 모든 이의 마음을 안정시키는데도 돈 만한 것이 없고, 성욕과 식욕마저 잃을 정도로 몸이 아프거나 노환이 온 사람들도 돈을 보면 에너지가 샘솟는다.
위에 언급한 사이비 종교들이 숭배하는 것도 알고보면 결국 돈이다. 더 많은 돈 신을 모시기 위해 더 많은 노예를 착취하고, 그렇게 착취한 이득을 쌓아 더 큰 돈 신의 제단을 만들고.. 어느 순간 그 종교 단체는 돈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더 많은 돈을 갖다 바쳐야 하는 시스템을 탄탄히 구축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돈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가장 현명한 사람들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종교적 존재이고, 모든 인간은 무엇인가를 강하게 믿는 신념체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쉽게 깨질 수 있는 '좋은 말 대잔치' 나 한낱 '학문 체계' 같은 것들 보다는, 그 무엇보다도 전능한 '돈'을 마음 속 종교의 자리에 모시는 것이 가장 실용적이고 현명하지 않겠는가.
역사적으로 기독교나 천주교, 불교와 같은 종교를 갖고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종교 없이 돈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늘 비난해왔다. 언뜻 생각하기에도 이는 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곰곰이 따져보면 이들 모두 각자 자기만의 종교 신앙을 갖고 있는 똑.같.은. 부류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그저 남의 종교를 비난한 상황에 불과하다.